제겐 올케언니가 두분이 있읍니다.
두 사람중에 한사람...
작은올케 언니가 아픕니다.
우린, 시누이와 올케 라는 관계보다 어쩜 거의 친 자매처럼
그렇게 지냈다 해도 과언은 아닐것입니다.
올케언니에게는 여동생이 없이 딸로서는 막내이고.
제겐 고명딸로 위로 오빠만 두분이 계시니 무작정 친 언니처럼 잘 따랐읍니다.
큰 올케언니와는 10년씩의 나이 차이가 나니 조금 어려웠었는데
작은 올케언니와는 나이차이가 난다 해도 워낙에 언니가 동안인데다
하나뿐인 시누이 마음을 자알 헤아려주기에
우린 많이 가깝고 친해질수가 있었읍니다.
오죽하면 나 시집오기전
작은 오빠가 하는말이
" 너도 시누이 노릇이라는것좀 해 보아라 "
할 정도로 우린 대채로 서로 이해하고 대채로 서로 좋아하는 그런 사이였읍니다.
귀가 시간에 늦어 대문안을 못 들어가면 오빠몰래 나와서는 대문도 곧잘 따주고 하는
그런 언니였지요.
그렇게 지내다가 저는 시집을 왔는데
매년 언니는 제게 된장을 담아주고 밑반찬과 김치같은걸 나누어 주며
친정 엄마처럼 내겐 너무도 고마운 사람이었읍니다.
내게 속상한 일이라도 있어 하소연이라도 하면
언니는 내게 상담도 곧잘 받아 주었고.
내가 슬퍼 울기라도 할라치면 언제나 내 등을 토닥여도 주었읍니다.
시집와 칠년간을 자식이 없어 애면글면 할때에도
많은 위로와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는...그러면 좋은일 분명코 있을거라는
격려도 서슴치 않았읍니다.
어려움속에 늦게본 딸아이가 태어났을때도
언닌는 자기 일인양 기뻐하며
아이 키우는데 힘들다며 수시로 밑반찬을 해 나르고
우리 딸 아이도 어여삐 여기며 자주 보아주곤 하였읍니다.
그렇게 내게 친 언니마냥 곰살맞게 굴던 언니가.
지금은 아픕니다.
유방암 2기 라고 합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때, 자꾸만 목이 잠겨왓읍니다.
한없이 안돼보이는게 제 마음이 너무도 쓰렸었읍니다.
괜찬겠지.
요즘엔 유방암은 아무것도 아닌데...
의학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혼자서의 무수한 질문과 대답을 하며
한편으로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오빠에게 가는 걱정 스러운 마음도 컷읍니다.
아픈 언니야 할수 없다 하여도 옆에서 지켜보는 오빠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싶은게 그리도 제 마음이 좋지를 않습니다.
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오고
바로 그날로 수원에 잇는 아주대학 병원에 언니는 입원을 햇읍니다.
그리고 또 바쁘게 입원 하루만에 수술로 들어갔는데
부랴부랴 수원에 올라갔을때는 언니는 이미 수술을 하고는
마취에서 깨어나는 중 이었읍니다.
엊그제 까지만해도 난 언니의 가슴을 볼수 있었읍니다.
양쪽으로 봉긋하게 솟아있는 언니의 두 가슴을...
그러나 불과 며칠만에 언니의 가슴은 달랑 하나만이 남아있읍니다.
가슴이 미어지는듯해.
눈물이 나올려 합니다.
그러나 울지는 않았읍니다.
지쳐있는 언니 앞에서 운다는것은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씩씩한 언니의 모습에 마음 한켠이 놓입니다.
힘들었을텐데...
많이 속 상했을텐데...
언니는 힘들게 올라왔다고 고마움을 전합니다.
점심을 먹으라고도 하고 한 옆에 놓여있는과일도 먹으라하고.
환자가 멀쩡한 사람들을 챙겨주기에 바쁩니다.
아픔에, 고통에... 간간히 찡그려지는 언니의 얼굴을 볼수가 있음에...
또 한번 마음이 에려옵니다.
" 언니 애 ?㎡六?힘내요. "
겨우 그 말만을 해준뒤 함께 올라갔던 식구들과 서둘러 병원문을 나섯읍니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술 결과가 좋고 10여일만 입원해 있으면 퇴원할수 있다는
말에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 힘내요 언니. 빨리 완쾌되어서는 전 처럼 시누이 된장도 담아주고
맛있는 반찬거리도 주고 해야지요. 이겨낼수 있을꺼예요.
감기쯤으로 생각하고는 툴툴털고 일어나기를 기도할께요 )
마음속으로 난 정말로 기도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특별한 신앙이 없는 저로서는 그냥
이름지을수 없는 신께 기도 해 봅니다.
언니 힘내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