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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쓰렴, 난 전화할게?


BY 얀~ 2002-01-12

시에 이런 게 있다. 세상살이 힘들고 지치면 찾으렴, 방 하나 준비해 놓을게, 와서 휴식하고 힘이 생기면 그때 돌아가렴. 그런 곳이 고향이 아닐까. 고통스럽고 외로워 몸이 망가지면 떠올리거나 찾는 곳 말이다. 포근하고 따뜻한 방이 기다리고 친구가 기다리는 곳이라면, 그런 곳에 가고 싶다.

첫 여행지는 제주도다. 성산포 바다가 내려 보이는 곳에서 질리도록 바다를 보고 싶다. 바다가 가깝지 않아 바다가 그립다. 올려보고 찌들려 살다보면 넓은 바다를 보며 쌓인 앙금을 녹여내고 싶다. 환경이 급박하게 변하고, 자꾸만 무뎌지는 감각으로 따라가기 힘들어 벽에 가로막힌 느낌을 풀어내고 싶다. 잡음이나 욕심들 다 버리고 버려서 가벼워지고 싶다.

두 번째는 지리산이다. 사진으로 본 지리산 편지의 홈페이지에서 느낀 그런 집에 몇 일만이라도 머물고 싶다. 아궁이에 불지피고 따끈한 방에 찐 고구마 먹으며 다만 얼마라도 산사람이 되고 싶다. 방에 뒹굴며 바람의 변화무쌍(變化無雙)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시래기 불려 된장 넣고 손으로 주물러 국 끓이고, 산채나물 먹으며 몸에 쌓인 찌꺼기 밀어내고 싶다. 폐 깊이 분진들 알싸한 산 공기에 내 뱉고 싶다. 답답하고 갑갑한 심장의 열기도 순화(純化)시키고 싶다. 유머 넘치는 산사람과 추억을 나누고 싶다. 여유를 찾아 하산하고 싶다.

세 번째는 거제도에 가고 싶다. 미래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꿈을 향해 노을이 물든 그곳에 앉아 술을 마시며, 친구들을 불러모으고 싶다. 사는 게 바빠 몰랐던, 그냥 흘려보낸 세월에 대해 한꺼번에 몰려와 벅차고 힘들 때, 서로 이렇게 견디며 살았노라 온기로 버텨보자. 장작이 타닥거리며 폭죽처럼 터지는 소리 들으며 감동을 나누고 싶다. 교감하고 싶다. 술 한잔에 어린아이처럼 들 떠 소리 지르고, 하루라도 그리움으로 엉켜보고 싶다. 신나게 웃고 떠들며 보내고, 헤어져 돌아갈 땐 정열의 등불을 켜고, 세상을 향해 활활 타오르면 좋겠다. 희망 용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오라 손짓하면, 준비 없이 훌쩍 가고 싶다. 청바지에 흰 티 남방 걸치고 부담 없이 웃으며 가고 싶다. 찾고 싶다. 미래의 친구여 이메일 하나 보내주렴, 손짓해주렴.


전화할까?

전화할까
푹 쉬고 내일도
잘 살아보자고 응원의 말 해줄까

노래를 들었노라
가사에 대해
느낌에 대해 말할까

멍청이 앉아 있는 전화기를 보며
바보가 된다
전해줄 말은 많은데, 걸 친구가 없다

웃는 목소리로
별들과 달과 손잡고
찾을까, 네 꿈에
꿈에 전화를 받으면
서로 꿈과 행운을 빌어보자

잠들지 못한 친구야
전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