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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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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하지 못하게스리~


BY cosmos03 2002-01-04

얼마전에 시 어머님의 기일이 있었다.
딸아이의 학원에서 오는 시간에 맞추려니 조금 늦을수 밖에 없었다.
104번 버스를 타고.
한방병원 앞에서 내려서는 도보로 조금을 걸어야했다.
매서운 추위.
그리고 미끄러운 빙판길..
택시를 잡아타면 겨우 기본요금 거리이지만
특별히 운동을 할 기회가 없다보니 기회만 생기면 걸으려 노력한다.
아이는 춥다고 징징대면서도 쫄랑거리며 따라와 준다.

양볼과 귓가가 발갛게 물 들때쯤 큰댁에 도착을 할수 있었다.
며느리중에 막내와 둘째인 나만이 빠져있었고
모두다 와서는 음식준비는 이미 끝내있었다.
한편으론 미안도 했지만..
나 역시도 십 수년을 해온 일인데 울 딸 말마따나
이젠 쫄따구들 시키고 뒷전에 앉아있어도 될것같아
미안함을 접기로 했다.
시 작은 아버님도 와 계시는데 미처 절도 드리지 못한채
저녁식사 준비를 마치고는 제사 준비를 하였다.
이미 손 아래 동서들과 맏 동서 그리고 며느리가 모두 준비해 놓은것을
목기닦고 주섬주섬 목기위에 놓으면 되는데
그 조차도 딸네들이 한다고 차고 앉는다 ( 시누이 셋 )

그래도 조금 미안하기에 탕국은 내 손으로 안치고는
동서들과 남은 시간들을 수다로 보내고 있었다.
어느정도는 제사준비가 마쳐졌나보다.
하나, 둘... 시 동생들이 들어오더니
역시 행동 굼뜬 사람은 어디에서든 표가나는지
울 서방 제일로 늦게 어슬렁 거리며 들어온다.
고연히 마누라 궁디는 발로한번 툭~ 하고는 차본다.
뉘알세라 고운눈 한번 흘겨주고는 분주히 왔다리 갔다리.
사실 아무 할일도 없는데 분주한척~ 한번 해 본다.
왜? 하하~ 울 서방이 왔지 않은가?
일 많이 했다는 광고?를 내야하니...
바쁠수 밖에.

이빨빠지듯 몇몇이 빠진 인원인데도 작은 집에 장정들이 서 있으니
그 한방이 꽉 차 보인다. (그날 모인 머리수 25 )
드디어 모든 준비는 끝났고...
시 아주버님의 염불? 이 시작된다.
사실 난 잘 모른다.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남녀호랑계교. 맞나?
아무튼 이 종교인데 작은 수첩을 꺼내 놓고는 염주 같은것을 손에 두르고
그 책자에 써 있는대로 읽으시는데
난 그게 무어라 칭하는줄 모른다.
그냥, 로마의 법대로 큰집의 법만을 대충 따라주면 되는것이니까.
알아들을수도 없는 말들을 왜 그리도 빠르게 하시는지...
그리고 그 시간은또 왜 그리도 긴지...
그 엄숙하고 경건하고...
시 작은 아버님을 비롯, 모두가 엎드려서는 아주버님의 염불소리가
끝나기만을 바랄밖에.

남자들과 아이들 모두는 방에 들어앉아 엎드려 있고.
여자들은 주방에서 삼삼오오 무릎을 꿇고 있는데.
형님께서 동치미를 꺼내오셔서는 날 보고 썰어 놓으라 하신다.
이따가 제사 끝나고 밥 먹을때 상에 놓을거라고.
얌전히, 최대한 손목에 힘을 주고는 쑹덩쑹덩 동치미를 썬다.
편상시처럼 딱딱딱딱~ 하고 쓸으면 그 소리가 너무 요란할까봐
조심조심 있는힘껏 손목에 힘을주고...
그래도 그 소리는 내 귀에 크게 들리는거 같다.
동치미 무 한개를 다 썰어서는 주방 싱크대위에 올려놓으려고
무릎을 세우고 일어서는순간.

하이고~ 나도, 주위 아무도 생각지 않았던 그 소리.
" 뿌~앙 "
흐억~
옴마야~ 워쪄? 이일을?
너무 힘을주고 긴장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조절이 안되어
내 궁디에서 염치없는 소리가 그 고요한 적막을 깨뜨려 버린거다.

세째동서는 웃음을 참느라 싱크대에 고개를 박고 있고.
형님은 연신 흠~흠` 하며 헛기침만을 해 대고..
머쓱해진 나는 동치미그릇만을 바라본채...
참말로 죽을 맛이다.
방안의 남자들은 들었는지 못 들엇는지 쉴새없이 아주버님의 염불같은 소리만이 들려오고...
쥐구멍~
참말로 그거라도 있으면 들어가고픈 그 심정.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시 작은 아버님까지 계시는데...
오짤꼬? 이 창피함을..
차라리 동치미를 깍뚝깍뚝 소리나게 쓸어서 그 소리에 묻어버렸으면 좋았으련만...

얼추다 끝나가나 보다.
두런두런 주위가 소란스러워 지는것이.
얼른 제사상은 치우고 식사준비를 해야하는데.
까타롭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둘째 시누이가 주방으로 들어오더니...
" 도데체 누구예요? "
" 응? 뭐가요? "
" 웬 소리가 그렇게도 커요? "
( 이론~ 그런 너는 방귀도 안 뀌고 사냐? )
" 그게 흠~흠~ "
말을 하려는데 피식패식 왜그리 웃음이 나오던지.
마음놓고 웃을수도 없고...
동서들과 형님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쏠리니
말안해도 들어나는 범인은 바로 나! 아닌가?
조신하지 못하게스리...
에구구~ 방정맞은 내 궁디야.

며칠후면 다시또 시 할머님의 기일인데...
그때는 조절을좀 잘 해야겠다.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아야할거 아닌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도 울 서방.
" 오나가나 그놈의 궁디는... "
머리한번을 쥐어 박혔어도 내 암말도 하지 못한채
조신치 못한 여자가 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