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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호스 아줌마의 신문읽기 50 - 아버지가 받은 졸업장…고 박종철씨 명예졸업


BY 닭호스 2001-02-27


지난 87년 경찰의 물고문에 의해 숨진 고 박종철(당시 서울대 언어3)씨가 26일 서울대 졸업식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대학에 입학한 지 17년, 박씨가 비명에 세상을 떠난 지 14년만이다.


박씨의 명예졸업장 수여는 국립대인 서울대가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당한 학생에게 나름대로의 `보상'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서울대는 지난 96년 개교 50주년을 맞아 6.25 참전 전사자 및 4.19의거 희생자에게 명예졸업장을 준 적은 있지만 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대는 이날 졸업식장 인문대 졸업생 자리 맨 앞쪽에 박씨의 자리를 마련하고 학위증 수여시 박씨의 이름을 제일 먼저 호명하는 등 박씨의 넋을 기렸다.


아들이 앉았어야 할 자리 바로 옆에서 졸업식 전과정을 지켜보던 아버지 박정기씨는 내내 숙연한 표정이었고, 가끔 하늘나라에 있는 아들 생각이 나서인 듯 고개를 떨군 채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기준 서울대 총장은 졸업식사에서 "오늘 우리는 가슴은 아프지만 뜻깊은 졸업장 하나를 준비했다"면서 "늦게나마 이 졸업장을 가족에게 전달하며 우리 모두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하여 애쓸 것을 새롭게 다짐한다"고 말했다.


또 서울대 인문대학은 교내에서 별도로 조촐하게 고 박종철군 명예졸업장 수여식을 갖고 박씨 죽음의 의미와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를 되새겼다.


아버지 박씨는 아들의 명예졸업장을 받아든 뒤 곧바로 교내에 설치된 아들의 흉상을 찾아 아들의 영전에 졸업장을 바치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이어 박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동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명예졸업장 수여 등 적당한 보상이 뒤따르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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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졸업장이니... 명예 박사학위니 하는 제도가 생겨나.. 우리 나라의 유명 정치인들이 타국에 나가서 그런 학위를 받아오는 일도 빈번히 생겨나고, 또 그 숫자만큼의 학위를 우리 대학들도 외국인들에게 수여함으로써 그 제도들은 어찌보면 민간외교의 한부분으로 자리매김해 톡톡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졸업시점이 되고 보니...
한국 민주화의 선봉이라는 故 박종철씨도 명예졸업을 하고,
한국 용기의 표본이라는 故 이수현씨도 명예졸업을 했다....

그리고...
나의 하나뿐인 시동생도 석사학위를 받았다.

나의 남편 병규에게는 남동생만 하나 있다.
그러니까 그 남동생은 나에게는 시동생이 되는데, 내가 시집올 당시 그는 물리학과 석사과정 한학기를 마치고 있었으며 나보다는 한 살이 많았다..

병규보다는 세 살 아래였지만, 나의 친정 오빠보다는 불과 한 살 아래인데다가 우리 오빠처럼 공부를 하는 처지라 시동생을 보고 있노라면 오빠 생각이 참 많이 났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우리 오빠 대하듯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막상 결혼을 하고보니 나에게 그의 존재는 어린 남동생의 의미가 되었다...

그런 그가 학위를 받는다하여 온 식구가 졸업식장으로 갔다.

그런데... 졸업식장에는 그의 여자 친구가 와 있었다.

그리고 학위 수여식 후에 다같이 경주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한 약속에도 그는 여자 친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어머니는 나에게 그 여자친구에게 자연스레 이것저것 물어줄 것을 요청하셨고, 나는 그 요청에 따라 어쩌면 나의 동서가 될지도 모르는 그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다...

나의 그런 숱한 질문 공세속에서 그 아가씨는 연신 얼굴을 붉히고 그 아가씨의 옆에서 나의 시동생은 난처한 낯빛을 감추고 앉아있었다...

둘은 학교 선후배 사이로 만나 5년 넘게 핑크빛 연애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둘은 이제 결혼을 생각하고 있으며, 그래서 나의 시동생은 오늘 이자리에 그녀를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들을 보고 있으니, 일년 반전에 나와 병규가 결혼을 앞두고 소위 연애라는 것을 한 석달쯤 하고 있을 때가 생각난다. 그 때, 티부이만 틀면 10시 드라마에서는 병규와 내가 주고받았던 둘이만 주고받기도 닭살돋던 말들이 고스란히 재현됐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우리가 한 집에 살게되자.. 우리의 대화는 티부이 8시반 일일극에서나 볼수 있는 어찌보면 진부하고 어찌보면 참으로 구차한 대화들로 바뀌었다...

결혼하고 석달쯤 지나서... 나는 그것을 느끼고 얼마나 상심했던가...남편과 나 사이에 주고받던 보석처럼 아름다운 말들이 사라지고, 이제 아이의 똥기저귀 이야기며, 나날이 줄어가는 통장의 잔고 이야기 같은 구질구질하고 하기만 하면 성질만 돋구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게 되었으니...

우리 일행은 천천히 늦은 점심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가족은 시부모님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으며, 그 젊은 커플과는 훗날의 만남을 기약하며 그 자리에서 작별 인사를 나눴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나의 시동생은 그 아가씨에게 시시콜콜 따져 묻는 형수의 주책을 들춰내며... 신경쓰지말라고 아가씨를 위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의 시동생도 병규가 그러했던 것처럼, 티부이 10시 드라마에서 나오는 소릴 해대며.. 하늘을 별도 달도 따주마 철없는 약속으로 아가씨의 마음을 사고 있을 것이란 거다..

시동생의 건투를 빌며, 젊은 두 남녀의 앞길에 있어서의 무궁무진한 행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