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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포옹 시간을 3분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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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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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집이 좋다


BY 카시오페아 2002-01-02


오늘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인가 보다
요즘 지은 아파트는 단열도 잘 되고
싱크대 북박이장에 라디오며 식기건조기 까지 있고
구조도 잘 되어있던데
우리집은 조금 세월이 지난 아파트라 
첫째는 단열이 잘 안 되어서
문을 닫았는데도 커텐을 펄렁이며 어디선가
작은 틈새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다

우리 아파트는 언덕 위에 있어서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겨울에는 높은 건물을 스쳐 가는 바람소리가
슬픔에 겨운 통곡소리 처럼 들려와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곳이다
어느 해 겨울이나 마찬가지로 부는 바람이지만
작년에는 잘 못쓰는 시지만
바람 소리의 슬픈 느낌이 내 가슴까지 전해와서
슬픈 시까지 지어내게 했다

아래 동네 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는데도 
체감 온도의 차이는 많이 난다
어찌나 바람소리가 심하게 들려오는지 외출할 때
많이 추울것 같아서 두꺼운 옷을 입고 나가
아랫동네로 내려가면 바람한점 없는 봄 같을 때도 있다
집으로 돌아 올 때면 가냘프지도 않는 몸을
바람이 동네 쪽으로 밀어내서
걸음을 앞으로 옮기지 못할 정도로 세게 분다
시베리아가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곳이다

여기 이사 온지가 7년째가 되었는데
추위를 타는 남편은 조금 서늘하기만 해도
보일러부터 돌려 다른 집들 보다 연료비가 훨씬 많이 나오고
춥다고 새 아파트로 옮기자고 하지만
나는 그냥 살자고 우긴다
내가 살고싶은 이유는 마음속에 숨긴체
여기도 살만한테 이사하려면 몇천만원은 부서져야 
된다고 그럴 돈으로 수리를 하고 살자고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이유는 다른 아파트 단지 보다 교통이 좋고
시내에서 많이 떨어져 있지도 않고
상가가 조금(?) 멀어서(7~8분 거리) 불편하기는 하지만
조용하고
더 큰 이유는 뒤쪽으로는 막힌 건물이 없어서
창 밖을 내다보면 서쪽 하늘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답답하거니 지루한 것을 못참는 나의 성격 때문에
아무리 편리하고 좋은 아파트라도
앞뒤가 막혀있으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것 같아서다

모내기가 끝날 때 쯤에는 
멀리서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가 밤새 들려와서 좋고
늦은 밤을 혼자 밝히고 깨어 있을 때 
충북선 밤 열차가 달려가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다
멀어서 감색으로 보이는 산봉우리들
비 개인 푸른 하늘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떠있는 하얀 구름들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어릴적 추억속으로 들어가 헤메는것도 좋다
우리집에서 우측으로 좀 떨어져 비켜서 있는 
작은 건물 벽에 아침햇살이 부서지는 것을 보며
행복에 찬 아침을 열기도 한다
 
그리고 더 나를 이집에서 이사를 가지 못하게 잡아두는 것은
해질 무렵이면 서산 마루위에서 온 하늘을 물들이는
붉은 노을 때문이다
노을이 질 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노을을 보려고
작은 방 창문을 연다

자연은 모두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노을이다
너무 아름답다 못해 황홀경에 빠지게 만든다
어느 해인가 저녁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혼자 보기가 아까워서 
아랫동네(같은 방향이니까)에 사는 친구에게
노을이 너무 아름답다고 내다보라고 전화를 했더니 
농담을 좋아하는 친구는 자기는 감성이 너무 메말라서 
봐도 아무 느낌이 없다고 하면서
혼자 실컷 보라고 하는것이다
안보면 후회 할거라고 해도 혼자 보란다
일부러 전화까지한 나의 성의를 봐서
그때 아름답던 노을을 봤는지 안봤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겨울이 추운건 싫지만 눈이 올 때는 좋다
4층이라 수많은 작은 얼음의 결정체로 부서져 
바람에 날리며 내리는 눈을 내려다 보면
아마 보지 않는 사람은 상상을 못할 정도로
그 느낌은 뭐라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건너편 야산의 소나무위에 핀 눈꽃도 아름답다

이 겨울이 가면 봄이 오겠지
봄이 오면 공터에 무엇인가를 심는 사람들의 
한가한 모습도 보이고
운동장에서 뛰노는 울긋불긋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고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비오는 밤이면 혼자 빗속에서 밤을 지키는
놀이터의 가로등 불빛이 쓸쓸해 보이는 곳이지만
즐거움을 만들며 살려고 노력하는 나지만
쓸쓸함에 잠시 젖어보는 것도
좋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시간이 된다
야외에 나가지 않아도 사계절 자연이 바뀌는것을 알 수 있는
우리집이 좋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지 않고 오래오래 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