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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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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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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세상이 아름답다!!


BY 통통감자 2000-10-19

사무실이 한가해진 오후 2~3시가 되면 가끔 주변에 있는 LG마트에 간다.

위치가 시화공단 가운데 있는지라 많은 외국인 연수생들을 볼 수 있다.

아이 기저귀며 몇 가지 용품을 사러 현금지급기 앞에 서 있는데,

동남아에서 온듯한 청년하나가 지급기 앞에서 여간 애를 쓰는게 아니다.

아마도 돈을 찾으려 하는 것 같은데, 자꾸만 계좌이체를 누르고 있다.


> 도와줄까요?

돈을 찾고 싶어요?


손짓발짓 하며 "구만원! 구만원!"을 외친다.

카드를 넣고 비밀번호를 누르게 했다.

9만원을 찾아주고, 남은 돈의 액수를 확인시켜 주었더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먼 이국땅에 와서 고생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멀리 중동에 가서 돈을 벌어오던 그 시절의 우리를 생각해 본다.

우리의 오빠, 삼촌, 아버지들이 그렇게 생활 했으리라.

장한 일을 한 것처럼 가슴이 뿌듯해 온다.


며칠전 기업은행에서 행원에게 큰소리를 치며 따지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 옆에는 보기에도 작고 여린 검은얼굴의 소녀가 눈물을 훔치고 있고,

주변에 그네들 또래의 외국인이 몇 명 더 있었던 것 같다.


> 왜 해약이 안된다는 겁니까?

얘네들의 친구가 다쳤어요.

산재도 안되고, 얘들이 지들돈으로 친구를 치료하겠다는데 왜 적금의 해약이 안된다는 겁니까?


내용인 즉 같은 공장에 근무하던 외국인 노동자가 다쳤나보다.

아마 불법 체류자인 듯 한 친구는 산재보상이 안되고,

회사에서 약간의 보조는 해 주었지만 치료비가 부족했던 듯 싶다.

같은 공장의 외국인 친구들이 자신들의 적금을 깨서 도움을 주고자 하는데,

은행에서 적금의 해약을 할 수 없다는 거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산업연수생으로 온 이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작업기간을 채우지 못할 것을 우려한 조치일 것이다.

한참의 실랑이가 오가고, 은행 측 에서도 난처한 듯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회사 사장이 보증을 하고 대출을 받는 형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얼마나 되는 액수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큰 돈이었으리라.

내 일처럼 나서주는 그 젊은이의 용기도 가상하였다.


세상이 삭막해졌다고들 한다.

그러나, 세상을 따사롭게 하는 것은 도드라진 많은 사람들로 인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작은 곳에서 잔잔히 베어지는 작은 보살핌에 의한 것이다.


가을 햇살이 아름다운 공단 한 가운데서,

아기 기저귀를 든 젊은 아줌마가 행복해 하고 있다.


아직은 세상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