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논 바닥에서 볏단이 치워지길 학수고대 하였다.
가을 철 별미를 위해서…
지금은 사시사철 돈만 주면 사 먹을 수 있는 것이 추어탕이지만 그 땐 그렇지 않았다.
이름 그대로 가을에나 한 두 번 맛 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삽을 어깨에 둘러 맨 아버지 뒤를 소쿠리와 호미를 들고 따라 나섰다.
미꾸라지는 아무 곳에나 살지 않는다.
미꾸라지가 사는 논은 따로 있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무논이래야 미꾸라지가 산다.
그런 논은 모내기 철이면 거머리가 많아서 성가시지만 미꾸라지를 잡기 위해선 그런 논이래야 한다.
무논은 벼베기 하기 전에 논 가장자리 흙을 삽으로 떠서 논 가운데 던져 놓는다.
가장자리를 깊게 만들어 그리로 물이 빠져 벼베기할 때 발이 물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가는 곳은 바로 그 곳이다.
논 가장자리 물이 고인 곳…
그 곳에 가면 아버지는 물이 고인 곳의 바닥 흙을 한 삽 가득 떠서 텅 빈 논 바닥에 던져 놓았다.
그 흙과 함께 던져진 노르스름한 미꾸라지가 논 바닥에서 펄떡거리기 마련이다.
우리는 펄떡거리는 그 미꾸라지를 손으로 움켜 쥐고 소쿠리에 주워 담았다.
미꾸라지 잡는 재미에 손이며 얼굴에 시꺼먼 진흙이 묻어도 모르고 알아도 상관하지 않았다.
진흙 속에 숨어 있는 미꾸라지는 손으로 이리저리 흙을 흩어보며 찾아내기도 한다.
가지고 간 호미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미 진흙이 팔꿈치까지 묻는 손이니 손으로 주무르길 꺼릴 필요가 없다.
삽질 한 번에 많으면 일곱 여덟 마리, 적어도 두 세 마리는 나오기 마련이다.
도랑에 사는 검은 색을 띤 미꾸라지하고는 다른 종류다.
색깔만 노르스름한게 아니고 크기도 훨씬 작았다.
검은 색을 띤 것은 크고 징그럽게 느껴지지만 논 바닥에서 잡은 그 미꾸라지는 조그만게 귀엽기까지 했다.
검은 색을 띠고 크기가 큰 미꾸라지는 비린내가 많이 나서 추어탕을 끓이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어머니는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려 그릇에 담아 두었다.
소금을 뿌리면 미꾸라지들은 요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몸 안에 남아있을 지도 모를 진흙을 토해내게 하기 위해 소금을 뿌린다고 하였다.
요동을 치던 미꾸라지들이 잠잠해지고 한 시간쯤 지나면 미꾸라지를 끓는 물에 넣어 삶았다.
삶아진 미꾸라지를 확에 넣고 갈고, 들깨도 일어 확에 갈아 고운 채에 걸렸다.
그러면 벌써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붉은 고추도 갈아넣고, 우거지를 넣어 어머니가 끓여주던 매콤하고 고소한 추어탕 맛은
이제 어디서도 맛볼 수 없다.
그 때 생각이 나서 미꾸라지를 사다 끓여 보지만 그 맛이 아니다.
비린내가 확 올라오기 마련이다.
사 먹는 추어탕도 마찬가지다.
어머니 말 대로 미꾸라지가 달라서인 모양이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발견할 수가 없다.
그 노르스름하고 조그맣고 귀엽기까지 하던 미꾸라지를…
어머니가 끓여 주던 추어탕이 먹고 싶다.
가을에나 한 두 번 맛볼 수 있던 진짜 추어탕 맛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