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사는 날이 어느 정도는 타성에 젖어간다고 생각했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또는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결국은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이라는 믿음 같은 것.
그런게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나보다.
오늘 새벽부터 아침까지 겪었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이제 3시간 정도만 더 기다리면 남편이 한국에 도착할텐데......
어쩌면 다시 못 볼수도 있었다는 아찔함에서일까, 그 어느 때보다 남편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이따가 공항에 갈 땐 더 더욱 운전에 조심해야지.
공항같은 데 갈 땐 늘 등려군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즐겁게만 가곤 했었는데......
오늘은 아무 것도 듣지 말고 조용히 운전에만 신경쓰면서 가야지.
남편이 나에게 누구였던가.
여러가지 조건과 상황때문에 날 반대하시던 내 시부모님들....
우리나라 내놓으라 하는 점장이의 말이라면서, 부득불 나와는 운이 좋지 않다는 둥.....
어쩌면 그리도 내 마음에 상처만 주셨던지.
그래도 그 많은 힘겨운 순간들을 오로지 나에 대한 사랑 하나만으로 날 버티게 해 준 이가 바로 내 남편아니었던가.
처음 만나서 부터 살맞대고 오랜 세월 살아온 지금까지 언제나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주는 내 남편이, 오늘처럼 새삼스레이 소중해본 적이 있었을까.
잊어먹을만하면 한번씩 터지는 비행기사고들. 그게 정말 남의 일인줄만 알았는데, 그게 내 남편에게도 일어날 수 있구나 하는 것이 너무도 놀라웠다.
다행히 이륙후 바로 엔진 결함이 금새 발견되어, 어느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모두들 안전하게 마무리되었기에 망정이지......
남편말이 생각난다.
비행기창으로 번쩍하는 불꽃을 보았을 때 맨 처음 떠오른 얼굴이 아내인 나의 얼굴이었다고....
내가 이렇게 가면 정희는 어떻게 사나....싶었다는 남편.
자기 죽는 것보다 혼자 남아 자식과 살아갈 내가 더 걱정이었다는 그의 말이 내 가슴에 쿵 와서 맺힌다.
난 과연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면 무엇을 맨처음 떠올릴까?
나도 내 남편처럼 내 남자를 더 걱정하면서 죽을 수 있을까?
며칠이면 내 생일이 돌아온다.
그렇게도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던 시부모님들도, 꾸준한 나의 노력과 우리 부부의 정답게 사는 모습을 보시고는 몇 해전부터는 진심으로 우리를 사랑해주신다.
아니, 며느리인 나를 정말 딸처럼 잘해주시고자 애쓰는 게 내 눈에 보인다.
어제도 며느리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뭘 해주랴시는 정겨운 어머님의 전화를 받았는데......
하마트면 당신 며느리 과부되고, 삼대독자 불귀의 객이 될 뻔 했던 걸 아시고는 얼마나 끔찍해하시던지......
부부가 살아가면 권태기도 있고, 또 다른 위기도 여러차례 거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어려운 시기를 넘길 때마다 스스로에게 맹세하리라.
그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고, 나 또한 그에게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 남편을 맞을 땐 정말 기쁘게 맞아야지.
그도 지금 내 생각을 하며 오고 있으리라.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