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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14

남편은 프로 주부였다


BY pulsi12 2001-12-15

"꼭 가야된다 그 고모님에게 총각때 내가 신세를 많이 졌거든"
"그라모 당신이 가지 와 내보고 가라쿠는데"
"아따 시방 내 일이 이렇게 쌓였는데 우예 가노"

위 대화는 저번주 토요일날 있었던 우리집 안방에서 벌어진
남편 과 나 사이에 있었던 대화 내용입니다
무슨일이냐구요?
지방에 사시는 둘째 시고모님 막내아드님이 장가를 간다고
청첩장을 받았는데 바로 지난 토요일 오후2시에 예식을
한다는거였지요
요즘 나도 집에서 엑스레이 찍는 팔자가 아니라
쬐만한 일 을 만들어 주중에는 쉴틈이 없거든요
황금같은 휴일인데 나도 쉬고 싶더라고요
그리고 솔찍하니 저그 고모댁 일 이지 내 고모댁 일인가도 싶고(에긍 돌삐날라 올라)
ㅎㅎㅎㅎ
그래서 산더미라고 표현한 서류뭉치를 보아하니
?p장 되는것 같고 해서 나도 핑계아닌 핑계를 댔지요

"밀린 빨래는 우짜고 가노 그리고 밑반찬 하며 청소는 언제 하고.."
심드렁하게 드러누우면서 한마디 했더니
남편이 담배에 불을 붙이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걱정말그라 내가 다 해놓으께 빨래도 하고 집도 반짝 반짝 닦아놓으께 일일 파출부 불렀다고 생각하고 다 시키라 마"

"그럼 반찬은?"

"아 그기사 내가 잘은 못해도 나름대로 해보께 그라고 반찬 김치만
있으모 되지뭐"

그럼 반찬은 하고 반문하는 것을 보고 남편은 얼추 성공이다 싶었던지
화색이 도는 얼굴로

"일나봐라 어깨 주무르주께 오데 오데 다리 주물까"
갖은 아양을 다 떨더라고요

"놔라 평상시 그리 좀 해 봐라 그라모 산더미 같은 서류는 우짜고"

"그기사 내가 틈틈이 내가 알아서 하끼다 걱정말그라"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대충 샤워를 마치고 화장을 하고
나섰지요
두어시간 남짓 걸리는 곳 이라 예식 끝나고 오면 겨울은 해 가 짧으니
아마도 어두워서야 돌아오지 싶더라고요
이래 저래 친척들도 만나고 예식을 보고 다시 돌아오면서
참 궁금하더라고요
일일 파출부가 된 남편이 얼마나 과연 일을 잘했는지도 궁금코
이번 기회에 주부일이 결코 만만한 것 이 아님을 인식시킬 필요도
있다 싶어서 내심 콧노래를 흥흥 부르면서 현관벨을 눌렀지요

"누고?"
남편의 목소리
아직도 애들은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은듯 했지요

"쥔 아줌마니까 문 열어요"
현관에 들어선 내 눈이 휘둥그레 해졌지요
눈 거슬릴것없이 깨끗이 청소된 거실바닥
베란다 목욕탕까지
그리고 걸레는 삶아 빤듯이 하얗게 빨려서 네모 반듯하게 접혀있고
평상시 자주 사용하는 움푹 들어간 팬 은 자주 쓰는거라
대충 수세미로 문질러 두고 쓰는데 반짝 반짝 닦여서 벽에
척 걸려있고 좌우간 살림솜씨에 놀라고 있는데
"내 오늘저녁밥은 안있나 저기 받혀서 묵을끼다"
그러면서 가리키는 곳 엔 평소 차 를 나누거나 간단한 간식을
먹을때 받히고 흔히들 과일도 들고 나와 깎아먹고
할때 쓰는 차 판이었습니다
서너개 포개어진 채 꽂혀있었는데 세상에나 반질 반질
닦여 있더군요

"이거 솔직히 사고는 한번도 안닦았제"
할말이 있어야지요
그러면서 또 한마디 잊지 않더군요
"평소 방 좀 깨끗이 닦아라 아이구 오늘 이방 저방 요방 주방
얼마나 박박 문질러 닦았던지 무릎이 시방 얼얼하다
걸레에 때가 얼마나 묻었던지 원"

또 할말이 있어야지요
트집거리가 없나 암만 휘둘러 봐도 완벽하게 일일 파출부 노릇을
했더라니까요
이러다가 내 자리가 위험해지는건 아닌지
혹시?
살림살테니 나더러 돈 벌어 오라는건 아닌지
이제 걱정이 됩니다

가스렌지에서 훌륭한 냄새를 풍기고 끓고 있는 김치찌개가
주부8단을 무참하게 했답니다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