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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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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이야기...[7] 어머니


BY ns05030414 2001-12-07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 딸로 태어나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광주리 장사 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광주리를 이고 시장에 나가던 날 부끄러워 혼났다고 했다.
할아버지에게 꾸중도 들었다고 했다.
양반 집 며느리가 체통 없는 짓을 했다고...

어머니는 결혼하고 십 일 년 동안 아이가 없어서 마음 고생이 많았단다.
드센 시어머니 시누이 등쌀에 눈물도 많이 흘리고, 아이가 없다고 쫓겨 날까봐 시앗과 한 집에서 사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고 했다.
뒤 늦게 얻은 자식들에게 쏟는 정성이 지극할 수 밖에 없었다.
큰 언니를 낳고도 내리 딸만 낳는 바람에 아들을 얻지 못할까봐 마음 고생은 여전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스스로를 유명인사로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아버지는 그 집안의 큰 아들이었으니 대를 이어야 한다는 부담이 어떠했을 지 짐작이 된다.
작은 어머니 둘 중 하나는 성격이 괄괄했는데, 자신은 아들이 여럿이고 큰 동서는 딸만 두었다고 은근히 어머니를 핍박하기도 하였단다.
결국 작은 집 아들 중의 하나를 양자로 들여야 할테니까 우리 어머니는 자기가 낳은 딸 보다 작은 집 아들에게 더 잘해야 하는 것이라고...
어머니는 그런 동서하고 삼 십 년을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여 본 적이 없었다고 하였다.
딸들에게도 큰 소리로 웃지도 못하게 한 사람이었으니 자신의 감정은 얼마나 절제하고 살았을까를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말을 안한다고 속조차 없으랴...
어머니는 셋째 딸을 낳고 셋째 딸이 젖먹이일 때 부터 광주리를 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딸이지만 작은 집 아들보다 잘 키우고 싶었으리라...
아들도 딸도 낳지 못하던 시절, 전주에서 제일 좋다는 여자 고등학교 옆을 지나면서 한 숨을 쉬었다고 하였다.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기에게 딸이라도 하나 있어서 이 학교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셋째 딸이 그 학교를 다닐 때 흐뭇하게 바라보며 어머니가 털어 놓은 고백이다.

농사일에 광주리 장수에 그야말로 쉴 새가 없었다.
손톱 밑엔 항상 까만 흙이 끼어 있었다.
손톱은 닳아 없어지고 양 끝만 뿔 처럼 돋아 있었다.
지문이 닳아지고 없어서 주민등록증을 낼 때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였다.
손끝이 갈라져 피가 나는 것은 일상사였다.
그러나 힘든 농사 일 중에도 자식들만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고 하였다.
아침이면 몸이 천근 만근 무겁게 느껴졌지만 자식들을 생각해서 일어나 움직였다고 했다.

노점상을 단속하는 사람들의 발길에 차여 광주리가 방천 둑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도 여러 번 이었다.
자기네 장사에 방해된다고 시장상인들로 부터 괄세도 심했다.
시내버스 차삯이 아까와 십 리 길을 무거운 푸성귀 광우리 머리에 이고 걸어 다녔다.
같이 광주리를 이고 푸성귀를 팔러 다니는 동네 아낙들이 혀를 휘휘 내둘렀다.
우리 어머니의 푸성귀 광주리의 무게에...
크고 힘이 센 사람도 아니었다.
유난히 조그만 체구를 소유한 사람이었다.
무거운 광주리 무게에 눌려 정수리에는 머리카락이 성글었다.
아무리 더워도 일 원 하는 냉차 한 그릇 돈 아까워 사 마시지 않았다.

당신은 그렇게 힘들어도 딸들에게 집안 일을 거들어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마치 공주마마 모시듯 키웠다.
작은 언니 남편이 언니에게 그랬단다.
가난한 농사꾼 딸이라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여왕마마 처럼 군다고...
작은 언니는 그래도 우리 집 딸 중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작은 어머니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딸 년들을 그렇게 키워서 나중에 남의 집 보내서 무슨 욕을 들으려느냐고...

당신이 머리카락이 성글어지도록 힘들게 광주리 장사하여도 작은 집을 돕는 일에 결코 인색한 법이 없었다.
술에 노름에 가산을 탕진했다고 작은 아버지를 비난하지도 않았다.
작은 집 돈 씀씀이가 우리 집에 비해 얼마나 헤픈 지를 우리가 고해 바쳐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당신이 할 도리만 하였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라서일까?
울 어머니 딸들에게 작은 어머니가 염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