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를 배웠던 아가시절을 우린 기억하지 못한다.
얼마큼 큰 뒤에 내가 걷고 있다는 걸 알기에...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이 얼마큼 큰 복인지도 난 몰랐다.
산을 하나 넘어 그 험한 산 길을 다녔을 때도
내가 걸을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얻지 못했었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길을 걷고
얼마나 다양한 길을 걸으며 살았을까를 생각하게된다.
몇년전에 "좀머씨"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 때는 자주 책대여점에 들려 눈에 들어오는 대로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겉표지가 얇고 특이하게 이쁜책이였다.
책 사이사이 수채화로 그린 주인공인 소년과 지팡이를 들고
무족건 걷기만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걷기만 하는 그 남자가 이상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하는 시골소년.
재미있고 우숩고 특이한 책이였고,
마음에 들어오는 동화같은 책이여서 딸아이에게도 추천했었다.
정신병이였다.
좀머씨는 일분도 앉아 있지 못하는 조급하고
가슴에서 열불이 터지는 정신병의 일종이였다.
그러나 좀머씨는 그렇게 걷기만 하면서도
슬퍼하거나 불평을 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남도 의식하지 않고 욕심도 없고
누구랑 타협하려고 들지고 않았지만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냥 걷고 또 걷고 걸을 뿐이였다.
나는 오늘 한 발자국도 집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난 좀머씨랑은 반대인 성격을 지녔다.
밖을 나가기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것이다.
조금 우울증도 있지만
밖을 나가는 것이 귀잖고 집에 있는 것이 편한 체질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면은 있다.
자연속에 있으면 하루종일 걸어도 피곤하지 않고 재미가 있다.
들녘이 좋고 산길이 좋고 물길이 좋고 바다가 좋고
그냥 자연과 함께 어울리면 피곤한줄도 힘든줄도 모른다.
봄 여름 가을은 풀과 나무와 친구가 되어 들길을 지루한 줄 모르고 걸었다.
이제 그 초록친구들은 없다.
남아 있는 것은 빈 들과 빈 나무들만이 껑충하게 서 있다.
그래서 겨울엔 눈을 기다리게 되나보다
나도 며칠전부터 첫눈을 기다렸다.
많이 기다린 것 같지 않은데...
어젯밤엔 눈이 내린 꿈까지 꾸었다.
서리처럼 간신히 얇게 내린 눈이였지만
태어나 처음눈을 대한 듯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눈길을 걷고 싶다.
아무도 밟지 않은 소복한 오솔길을 걷고 싶다.
눈 밟는 소리.
청아함...뿌듯함...
눈이 내리는 바다 백사장도 아주 많이 그립다.
파도 치는 소리.
알싸함...짜릿함...
'무지무지무지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