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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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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각시의 일상1


BY 우렁각시 2001-12-04

11번째 결혼 기념일 날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그의 친구는 만나자고 연락이 오는지.. 정말이지 영양가 없는 그의 친구가 죽도록 미웠다. 밥 12시가 다 되어 속 알 머리 없는 내 남편이 연락이 왔다. -"으음...난데.. 지금 집 앞 이거던... 애들은 자나?" 나의 목소리가 왜 새침할 수밖에 없는지 그는 분명 아리라.. -"네에.(한숨). 잠들었어요." -"그럼.. 옷 갈아입고 도로변으로 나오지.. 어디 갈 때가 있어.." 행여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할까봐 . 그는 전화를 빨리도 끊었다. '에고 에고.. 우껴 증말. 난 거울에 옷을 대보며.. '치이.. 이 시간에 갈 때가 어디 있겠어.. 내 결혼 기념일은 망했다.. 망했어..' 요런 생각이 들면서 근데 옷은 왜 이리 제일 이쁜 노미로 골라 입는고야. 초겨울 저녁은 상쾌했다. 우리는 멀리 월곳 까지 갔다. 밤바람을 맞으며... 팔짱을 끼고.. 오색찬란한 네온의 거리를 걸었다. 그는 회를 먹자고 자꾸 보챘지만.. 난 그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란 걸 안다. '회 한 접시가 얼마인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 내일 아이들이랑 스파게티 먹을래요" 간신히 그를 말렸다. 우리는 1시간이 넘게 걷다가 이내 집으로 돌아 왔다. 돌아오던 중.. 라이브 카페가 눈에 띄었다. 그는 그곳에 들어가.. 따끈한 커피 한 잔 하자고 또 보챈다. '에고 에고..여기 커피 한잔이 얼마인데..' 왜 이 대목에서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건지.... 누가 아줌마 아니라고 할까봐.. 아무래도 내 머리에 이상이 생겼나 부다. 집에 다다랐다. 그는 서운한 눈치이다. 그가 내 손을 끌고 공원으로 향한다. 잠시 후..그는 카센타 건물 앞으로 가더니 자판기 커피를 뽑아 왔다.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그가 노래를 부른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그가 처음 프로포즈하면서 불러 줬던 그 노래.. 강촌의 나룻배 위에서 불러줬던 그 노래를 10년 훨씬 지난 지금에와 눈을 지그시 감고 불혹의 내 남편은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생음악을 마치더니 자동차 트렁크 속에서 뭘 꺼내왔다. 예쁜 포장지에 쌓은 물건.. 뭘까.. 집으로 들어왔다 .설레는 맘으로 풀었다. 내가 저번에 백화점 가서 만지 작 거렸던, 와코르꺼.. 슬립이다. 보라색 끈이 가지런히 가슴까지 내려와 심플하게 엉덩이를 덮는 속옷.. 난 입이 함박만해 졌다. 그는 자꾸 입어 보라고 재촉했다. 가슴에 살짝 대보았다. 이뻤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온.. 숫자..149,000원.. 난 입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세상에.. 넘.. 비싸.. 난.. 정말 내 맘에 꼭 들었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다시 물건을 갯겨서 상자에 넣었다. 그는 실망스런 모습으로 말했다. -"맘에 그렇게.. 안 들어? 그래도 입지.. 큰 맘 먹고 사준 건 데.." -"아니 아니.... 내 맘에 들어요.. 근데 나 이 옷 넘 비싸서 못 입겠어..요.. 그대신 내일 정말 나한테 필요한 것으로 바꿀래요.." 그는 내 마음을 알기나 알까.. -"에이.. 그냥 입지.. 당신도 말야.. 그 옷 입을 정도는 돼." 강하게 입으라고 하면 입을 수도 있을텐데.. 딱 두 번밖에 말 안 하냐... 난 갈등을 많이 했다. 아니야.. 정말 입을 정도는 정말 안돼. 포기하기로 했다. 잠을 청해본다. 잠이 올 리 없었다. 자꾸 그 옷이 아른거려서.... '슬며시 일어나서 딱 한번만 입어 볼까.' 이 생각뿐이었다. '한번만 입어보고 넣어 두는 거야..' 아..내 ..침 넘어가는 소리가 왜 그리 큰 거니? 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한번.. 딱 한번만.. 입어 본다고.. 했다가는 정말 입고 안 벗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난.. 포기하는 연습을 크게 했다. 오늘 낮에 백화점에 갔다. 예쁜 신발을 살까.. 셔츠를 살까.. 내가 사고 싶은 게 다 모여 있었다. 백화점 안을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결국, 난 우리 아이들 겨울 옷으로 한 벌씩 사왔다. 우리 껍질들.. 오늘 봉 잡았네.. 그래.. 사는 게 다 이렇지 뭐.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11번째 결혼 기념일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