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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당신은...


BY 1004bluesky1 200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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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이 왔어요!

 
 
 
 
 
 
 
아침부터 자꾸만 무거워지는 몸을 이끌고
잠에 빠져 깨어나지 않는 아이를 피해
바지런히 청소란 걸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눈온다 눈!"
전화 속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올라가 있다.
"뭔가 멋있는 말 한마디 해줘야지"
재촉하는 목소리 뒤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응,끊으면 멋있는 음악 넣어줄게.'
  '몇 번째 전화야?'
'눈 오는 거 보면서 커피 한 잔 하고 싶다.'
'눈 덮인 차안에서 사랑을 하고 싶어.'
 
여기까지 생각이 머무르고 나니 막상 그에겐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졌다.
멋적기도 하고 실현가능하지 않은 것도 있고
어쨌든 내게서 겨우 나온 답은
"저녁에 맛있는 거 뭐 먹을까?"
 
전화를 끊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항상 눈 오는 날이면 먼저 전화를 걸었던 내가
막상 전화를 받고 나니 참 깜깜하더라는 게.
 
10년도 더 전에 첫눈 온 어느 날
들떠 있는 우리들 곁으로 지나가시는 국문과 선생님께
멋있는 한 마디를 기대하며
"선생님 눈이에요."
하며 내민 눈덩이 위로
"오, 그러네.자네들 일찍 와서 공부는 안하나?"
하고 던지시던 그 선생님의 난감함을 이젠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눈덩이 하나를 들고 들떠 있던
그 시절의 감성을 지나서
부엌쟁이 아내의 한마디로 머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스라하게 가슴을 쓸고 지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아빠 학교에 가서 사진 찍자는 아이들을 데리고
달려간 학교는 온통 차들로 막혀 그냥 되돌림
낭만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보다.
낭만에도 계획이 필요한 건가?
 
 
 저녁이 되어도 여전히 쏟아지고 있는
올 겨울의 첫눈을 보며 이렇게 되뇌어 본다.
'내게 당신은 항상 첫눈 같은 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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