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젊은 객기에 엉뚱한 짓을 제법 하고 돌아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창피한 것중의 하나가, 일본회사에 들어간 사람이 일본말을 쓰지 않기로 작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일본 사람은 36년간 우리 민족을 착취하고도 아직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아주 나쁜 사람들이었으니까~ 내가 비록 일본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민족적인 긍지도 없이 일본말을 쓸 수야 없지~ 암~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 내가 일하던 일본회사의 각부별 부장은 모두 일본에서 파견된 일본사람들 이었는데, 당연히 이 양반들은 일본어로 모든 업무지시를 내렸고, 첫 입사한 남자직원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일본어학원에 등록하기였단다. 헌데 나는 왜 그렇게 고 놈의 "하이(네)"소리가 하기 싫었던지 1년이 지나고 어느 정도 부장의 지시사항을 알아듣게 되었을 때도 대답은 꼭 "네~"라고만 하였단다.
요놈의 시답지 않은 민족정신은 입사 2년이 다 되어가던 때, 나의 이 이야기를 들은 고등학교 선배언니의 따끔한 나무람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는데, 언니왈!
" 너는 지금 매우 바보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는거야. 네가 그렇게 생각할수록 일본어를 더 공부해서 너의 의사를 확실히 밝히고 업무능력도 좋아야지. 그리고 적은 알아야만 적을 이길 수가 있는거야~ "
하지만 이것보다 더 엽기적(?)이었던 것은 바로 한복입고 회사출급하기였단다. 당시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분들중에 길이가 조금 짧은 한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다니시는 분이 많았는데, 무슨 정신으로 그런 결심을 하고 다녔는지도 모르겠는데, 얼마나 그 한복이 좋아보이던지 아무런 생각없이 연두색계통, 주황계통, 흑백계통으로 세벌을 마련해서는 일주일에 한, 두번씩 한 2년을 이 옷을 입고 회사에 출근을 한것이지. 한마디로 쎈세이녈한 반응이었지~ 겨우 스무살이 된 아가씨가 이러고 다녔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내가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 없는 나의 객기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입사 2년후 야간대학에 입학하여 다닐 때도 학교까지 이 한복을 입고 보란듯히 떨치고 다녔는데 하루는 회사를 끝내고 학교가는 버스를 타려고 명동의 정거장 앞에 서 있는데, 한 구두닦이 아이가 구두를 들고 나에게 조심스레 다가와서는 "저, 그런데요, 누나, 유관순누나 동생이예요?" 하고 묻는거야. 그래서 내가 "얘는, 유관순누나가 언제 죽었는데 내 언니니?" 하였더니 "그런데 왜 이런 옷을 입고 다녀요?" 하고 물은 적도 있었지~ (이날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있었거든.)
이 한복입기를 끝낸 기막힌 사연이 있었으니, 당시 우리 회사에는 일본 오차만을 하루종일 끓여내는 조그만 차실이 있었는데, 일본 사람들은 아침 시작을 오차(일본곡차)로 시작해서, 거래처 손님이 와도 오차, 점심 먹고 들어와서도 오차, 일본에서 출장온 사람이 사온 과자를 먹을 때도 오차, 아무튼 하루종일 오차를 마시는 관계로 오차잔을 설거지 하는 아줌마가 따로 있었단다.
하루는 이 아줌마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아주 계면쩍고 곤란한 표정으로,
"미스 조~ 내가 미스 조를 워낙 좋아해서 묻는 것인데 솔직하게 이야기 해 줘. 진짜로 한복을 입는 이유가 뭐야? 응?"
띵~~~ 솔직한 이유라니~ 순간 이상한 기분이 전신을 확~ 감싸는데~
" 그냥 좋아서 입지요~"
"아니야, 말하기는 좀 뭐한데, 혹시 임심한거 아니야?"
그 아줌마의 부언 설명이 회사내에서 내가 임신을 하여 불러오는 배를 가리려고 한복을 입고 다닌다고 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아니 무슨 배가 2년씩이나 불러오고 있담~ 또 불러오는 배를 가리려면 매일 한복을 입어야지, 한복 안 입고 오는 날의 나의 날씬한 24인치 허리는 보지도 못했단 말인가?
광자야, 네가 더 만나러 S대에 갔을 때도 한복입고 간 적 있니?
지금은 돈 주고 하래도 이렇게 못할 것 같다, 좀 과하기는 과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치?
그래도 이 한복 졸업식때 졸업 가운 속에 잘 입고 사진찍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