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자야, 우선 나의 메일이 너에게 전달이 잘 되었다니 이제 안심이다.
앞으로는 또 다시 연락이 끊어져 서로 그리워만 할 일은 없겠지? 그리고 그 곳 병원에서 일하는데 바쁠 터이니 답장보내는 것에 너무 급한 마음을 먹지 않아도 된다. 사실 나는 요즘 조금 한가하거든... 내가 돌보고 있는 조카(이 사연은 나중에 다시 자세히 이야기 하여 줄께)가
지금 미국여행중이거든. 18일경 돌아온다고 하였으니 그 사이에는 좀 한가한 나의 시간을 즐길 수가 있단다. 이 한가한 것이 또 문제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천천히 시간 나는대로 우선 우리 지난 날이나 회상해 보자꾸나...
그런데 우리가 사진 찍으러 갔을 때가 네가 수술한 직후이었나? 기부스를 하고 우리 둘이 극성을 떨었던 것이니? 정말 대단한 정열이었네... 내가 너를 좋아했던 것이 바로 이런 점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미국에 간 후로 다시 다리 수술은 안했니? 그 때보다 더 불편해지지는
않았는지, 생활하는데 커다란 애로사항은 없는지 모르겠다. 하기사 미국은 이 곳보다 모든 편의시설이 잘 된 곳이기는 하니까, 잘 지내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었다만...
운전하고 다니겠지?
나의 알레르기? 물론 결혼후에도 한 10년 애를 먹었는데 나중에 장충동에 있는 무슨 유명한 피부과를 한 1년 다녔고 (이 때 굉장히 살이 쪘었단다. 몇달 만에 만나보는 사람이 못 알아 볼 정도로. ) 나중에는 한약을 많이 먹었단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이 알레르기가 나를 떠나갔단다. 아직도 햇볕에 특히 민감하여 초여름에는 노출되는 부위는 좁쌀같은 것이 온통 솟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견딜만 하단다.
아! 그런데, 지금은 위장 약을 먹고 있어... 작년에 1년사이에 9kg이나 살이 빠지고, 먹기도 힘들어서 남편에게 끌려서 병원에 가서 초음파, 내시경, 피검사등을 하였는데 갑상선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고, 위염이 심하고 아주 조그만 종양이 있다나? 아직 종양의 크기나 성격이
떼어낼 정도는 아니라고 해서 지금 3개월째 약을 먹고 있는데 조금 위가 편해지기는 한 것 같은데 아직 살이 다시 오르지는 않았다. 워낙 든든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던 지라 살이 빠진 지금도 그냥 보기 좋을 정도라고요~~~
가끔 편두통이 있다니? 상습적인 것인가? 하기사 의사 선생님이시니 증상에 따른 상황판단은 잘 하고 있겠지만...
그래 광희야~ 우리가 그렇게 속 마음, 집안 사정등을 속속들이 이야기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아마 서로 환경이 많이 틀렸기 때문이겠지? 지금 이렇게 다시 이런 저런 회상을 솔직히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이제 나이가 드니 훨씬 더 솔직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 같아. 소영이하고도 예전에는 나누지 못하였던 것 이야기들을 아무 스스럼없이 나누게 되더라구...
사실 나는 중.고등학교 때가 제일 힘이 들었단다.
생활능력이 전혀 없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엄마는 조그마한 음식점을 운영하시느라 집에 계시지 않고, 엄마의 자리를 큰언니가 대신하여 자신의 자식 3남매와 함께 나와 내동생 이렇게 5명의 자식을 키우다시피 하였으니 언니는 항상 힘들어하였고 (언니와 나는 15년 차이나 나니 밖에 나가면 모두 엄마와 딸인지 알았다니까~), 형부의 하는 일도 별로 신통치가 않아서 아~ 삶이란 고해로구나~ 이런 험한 세상을 굳이 애쓰며 살아야하나 하는 회의에 항상 괴로워하는 설익은 풋내기 사유가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 책 읽기였고, 어짜피 대학은 갈 형편도 못되는데 하면서 너희들 시험공부할 때 나는 오로지 책 읽기에만 몰두하였는데... 별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지는 않아... 현실성 없는 여러 간접경험들이 오히려 사는 것을 괜히
우습게만 여겨지게 하여 20대에 정말 겁없이 설치고 여과장치없이 자신을 마구 발산하게 했던 원인이었던 것도 같더라구... 결국 이 것도 내 성격의 한 단면의 발산이기는 했겠지만...
우후후~ 왜 내가 너에게 메일을 쓰면서 이렇게 지나간 날의 나의 초상화를 자꾸 그리게 되는지 모르겠네? 저절로 글이 이렇게 씌여지네? 괜찮지? 너는 시간날 때 가끔만 소식 전하면 된다.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