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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내가 맘에 드는 날


BY ns05030414 2001-11-21

종로 5가에 갔다.
내년 봄 아파트 화단을 단장해 줄 알뿌리들을 사기 위해...
수선화, 튜울립, 히야신스...
사실 좀 망설였다.
내년 봄 꽃이 필 무렵이면 난 이사하고 그 꽃을 못 볼 가능성이 훨씬 많은데, 사다 심어야 할까 말까를 놓고...
그러나 결국 찾아가서 사들고 왔다.

남편과 결혼하고 이 십 년 동안에 스무 번 이사를 다녔다.
그리고 언제 부턴가 난 이삿짐을 풀기도 전에 꽃을 사다 심었다.
아파트이건 개인 주택이건 상관하지 않고 ...
내가 사는 곳이 높은 층이건 낮은 층이건 상관하지 않고...
내 집이건 남의 집이건 상관하지 않고...
이삿짐을 싸는 도중에도 꽃밭에 나가 꽃을 가꾸고 물을 주었다.
남편은 처음엔 미쳤느냐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썩 똑똑한 짓 같진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남편은 이 미련한 짓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젠 가끔씩 앞장을 서기도 한다.
엊그제도 꽃양배추를 사다 심자고 하였다.
서서히 그 기쁨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제법 묵직한 알뿌리를 들고 오면서 난 웃었다.
미련한 짓임이 분명한 줄 알면서 이 짓을 하는 내가 웃으워 웃었다.
난 이사가고 나면 그 뿐 아무도 누가 그 꽃을 심었는 지 모를 것이다.
그래도 해마다 봄이면 꽃은 필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으며...
상상속의 아름다운 꽃 무더기를 보면서 나는 미련한 내가 좋았다.
이렇게 가끔씩 미련한 짓을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내가 마치 커다란 부자라도 된 듯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미련한 짓에 돈을 쓰며 즐거워할 수 있으니...

나는 이 일이 하는 일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는 일을...
자기가 살 곳이 아니라도 상관하지 않고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는 일을...
자신이 생각해 봐도 미련해 보이는 일이 사람의 마음에 가져다 줄 수 있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내 아이들도 느끼고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내가 참 마음에 드는 날이다.
미련해서 더욱 마음에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