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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 - 남루한 나를 만나다.


BY 가을내음 2000-10-10

오늘 아침에도 안개가 끼었습니다.
19층까지 올라온 안개는 나를 그 범위 안에 가두워 버립니다.
요즘은 매일 아침 안개를 만납니다.

가끔은 그렇게 회색 도시 그대로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릴적 숨박꼭질을 하듯이, 내 삶을 그렇게 안개 속 어딘가에
감춰 버리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안개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게 해 줍니다.
그래서 궁핍한 나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셈이 됩니다.
갈 수록 이기적인 이 세상에서 나도 얼마나 이기적인 가를
가늠하게 - 가끔은 안개가 나를 일깨웁니다.

꼼짝없이 안개에 갇혀 버리고,
더 이상 누구에게 부축 받을 수 조차 없는 이
아침은 차라리 형벌이 됩니다. 등교하는
아이를 배웅하려고 엘리베이터를 내렸을때
확~ 달겨드는 안개의 그 성긴 냄새....
아이가 안개속 어딘가로 합류했습니다.
멀리서 아이가 엄마를 봤다면 나도 안개속 어딘가에
묻혀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날에 아침 햇살은 서서히 안개를 부식시키고
그리고 내 짧은 시야를 넓혀 줄 것입니다.
그 부식된 안개는 샛강의 물위나 논바닥의 벼들위에
살포시 흔들거리며 앉아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압니다.

혼자 사는 내 친구는 이 아침 전화를 해 왔습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녀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설핏 알것도 같습니다.
그녀가 지닌 일상속의 사소함들이 그녀를 힘들게 하나봅니다.

홍역을 치르듯,
심한 몸살을 앓듯이,
늘 가을을 끌어 안고 아파 하는 그녀에게
안개가 걷히듯 그런 아픔들이 걷히기를 희망합니다.

안개가 나를 엄습하는 가을아침에....
가을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