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기침하는 아이때문에 어제밤 제대로 못 잤다.
병원에 가서 주사 한대 맞추고 학교에 보내고
동생이 누워있는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아니 근데 1207호에 있어야 할 동생의 침대가
밤색 배를 훤히 드러낸 채 텅 비어있는 것이 아닌가.
"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혹시 ..."
순간 머리속엔 불길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스쳐갔다.
앞에 있는 다른 보호자 할머니보고
" 여기 있던 진영길 환자 어디로 갔나요?"
하고 물으니 조금전 호스피스실(임종환자들이 가는 병실. 1인실)로
옮겼단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추석전부터 일주일이 고비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던 의사의 말에
얼마나 마음조리며 지내온 하루하루였던가.
전화벨만 울려도 혹시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은 아닐까?
늘 불안했었다.
계단을 뛰어내려 10층 호스피스실로 내려가니
동생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채 자원봉사자의 등에 등을
기대고 힘없이 앉아 있었다.
다행히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두 분이 오셔서 한분은 동생의
등을 지탱하고 앉아계시고 한 분은 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계셨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머리위에 하얗게 일어난 비듬과 눈 옆에 흘러내린 하얀 소금기
같은 것을 닦아 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올 1월부터 시작된 병원생활.
"신장암으로서 윌름씨 종양이라는 악성 신생암입니다. 벌써 3~4기
진행상태라 사망까지 이를 수도 있습니다."
하는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도 설마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31살. 아직까지는 너무 젊은 나이이고, 얼마나 좋은 신약들이
많이 나와있는데 "그까짓 암 얼마든지 이겨낼수 있을거야"하며
동생을 위로했었는데, 그놈 정말 독한 놈은 독한 놈이군요.
1m 80cm의 키에 85kg. 학교 다닐때는 장거리 육상선수도 하고
감기한번 걸린적 없는 정말 건강한 체질이었는데....
산다는 게 뭔지?
돈 벌어서 장가간다고 알뜰히도 모아서 방 하나 얻을정도의
돈도 마련하고 작년에는 선자리도 많이 들어왔었는데.
이제 장가만 가면 되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산다는 게 뭔지?
초등학교 4학년때 엄마을 잃고
새엄마 밑에서 온갖 설움 다 받고
이집 저집 눈치밥 먹으며 살아온 세월
이제 돈 좀 벌고 새로운 가정을 꾸미려나 했더니
병마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구나.
그래 막내동생 영길아
이왕 갈거라면 고통없이 편안히 가거라.
이 세상 더러운 세상. 서러운 세상. 아픈 육신 훨훨
미련없이 던져버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가거라.
흔히들 말하는 천국으로 가서 천사들이 노닐고
부정과 부패. 더러움이 없는 깨끗한 세상에서
너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누나가 그동안 간병하면서 가끔가다 눈 흘기고
불평했던 점 미안하고,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다 용서하고 우리 다음 세상에서 만나서는 헤어지지말고
살자꾸나.
너는 정말 좋은 동생이었어.
안녕!
너를 사랑하는 누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