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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쓰는 미스김과 커피타는 김선생


BY 통통감자 2000-10-02

서른 두해의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 2년 6개월 만이 조직사회에 적을 두고 있었다.
대학을 나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처음 들어간 직장역시 꽤나 좋은 국립연구기관이었다.

하지만, 24살에 어렵게 들어간 첫 직장을 2년 6개월 만에 그만두게 된 연유는 너무도 우스운 나의 일 때문이었다.
국립ㅇㅇ연구소.
치이는게 박사고 밟히는게 석사인 이런 우수한 기관에서 난 서로다른 두 가지 일을 함께 해야만 했다.

동갑내기 행정보조 여사원이 한 명 있기는 했지만, 오래된 경리아가씨는 부장보다 높다 했던가?
18살 어린나이로 6년 넘게 한 직장에 있다보니 부장도 과장도 미스정에게는 설설 기었다.
반면 학교를 갓 졸업한 애숭이 나는 그들에게 한결 부드러운 상대였으리라.

하긴, 미스정의 당찬 말에 그들도 늘 쩔쩔매었으니까.

> 미스정? 나 커피한 잔 가져다 주겠어?
> 과장님. 저 바쁜데요?

마흔이 넘은 과장이 쭈삣쭈삣 엉성히 있을때 난 어쩔수 없이 뭉기적거리며 일어나 커피를 타다 주어야 했다.
착한 여자 컴플렉스였던가?

어느날 인가부터, 그들은 점점 미스정에게 부탁하는 것보다는 내게 부탁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그 부탁을 할 때의 호칭은 늘 김선생.
공무원 사회가 경직되어섰을까?
유독 미스 ㅇㅇㅇ 이라고 불리던 사무실에서, 난 커피를 탈때만 김선생이라 불렸다.

언제부턴가 논문쓰는 미스김과 커피타는 김선생의 역할을 번갈아 하면서, 나는 허탈한 마음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지금만 같았더라면 정중히 거절할 줄 아는 당당함을 보였거나, 아니면 웃으면서 포용하는 너그러움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믈여섯 겨울.
난 고향으로 낙향을 결심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긴 가방끈을 기반으로 과외선생이 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행복했다.

내 말을 맹신하는 작은 천사들을 바라보며, 아무 스트레스 없이 내 가진것을 다 풀어내어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내 결혼식장은 유명한 석박사는 한분도 안오셨지만, 교복입은 내 작은 제자들이 한 구석 가득 메워줬다.

지금은 사회가 변했으리라 생각한다.
더이상의 논문쓰는 미스김도 커피타는 김선생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직장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정당한 일을 하고, 응분의 보상을 받는 자리여야 한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여성에게도 알맞은 직분이 있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정당히 평가받기를 기대하며 .....

- 통통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