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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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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이 生을 다하던 날...4


BY dlsdus60 2001-06-13

갑작스런 내 여자친구의 출현에 형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쥐구멍이라도 ?는
듯 돌담 여기저기를 기웃 거렸습니다.
나는 길 모퉁이에서 엄호를 하고 있던 상황이라 그다지 긴장은 안되었습니다.
형이 혹 내친구가 볼까 봐 벽에 바짝 붙어 자세를 낮추며 게처럼 옆으로 걷기
시작하자 나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형! 빨리 대밭으로 들어가!!"

형은 그 소리에 구세주를 만난 듯이 손을 들어 화답을 하며 쏜살같이 대밭으로
뛰어 들어가 숨었습니다.
몸은 추워 꽁꽁 얼고 있었지만 여자에게 그것도 동생 여자 친구에게 알몸을
보인다는 것은 가슴이 찢어지는 뼈 아픈 기억이겠지요.
그것은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동반되었기에 더 아플 수 밖에 없는 일이였지요.
한참을 추위에 떨면서 숨어 있는데 여자 친구는 형을 발견하지 못하고 길을 지나
갔습니다.
다행히 들키지 않는게 하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못을 해도 의도적으로 한 것과 실수로 저지른 일은 법정에서도 형량를 구분
하듯이 하느님도 그날은 그렇게 하신 것 같았습니다.

형은 대밭에서 떨고 있었고 나는 길 모퉁이에서 대밭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평상시에는 그렇게 짧던 길이 오늘따라 왜 그렇게 길게만 느껴 지는지 우리를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정신 이상자가 아니면 이런 날에 빰바라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였습니다.
아버지가 원수 같았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아니고서야 자식들을 이렇게 눈바람이 휘몰아 치는
골목을 맨살로 뛰게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인 우리에게도 자존심이 있는데 구겨도 이렇게 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형은 머리가 더 컸으니 열받는 심정이야 더
했겠지요.
아니나 다를까, 대밭으로 뛰어 들어가 둘이 오돌오돌 떨고 있는데 형이 코를
훌적거리며 그러더군요.

"종필아! 우리 여기 숨어 있다가 동네 한 바퀴 돌 시간이 되면 나가자."
"그럴까? 그러다 아버지가 우릴 감시하고 있으면 어떻해!"
"설마 그렇겠냐! 날씨도 춥고 눈도 오는데 우리가 보이지도 않을꺼야."

형의 말을 들고 나니 그럴 듯 하였습니다.
공은 잘 받지도 못하면서 잔머리는 잘 돌아가는 형이 얄밉기도 했지만 그때는
왠지 믿음이 가더군요.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자기들 집앞에 눈을 치운다고 나와 있을 상상을 하니
창피함 보다 더 큰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미친놈 취급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였습니다.
우리들의 속내를 모르는 그들 중에는 정신병원이라도 보내야 될 것 같다는 충고
아닌 충고를 부모님께 드릴 분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때를 기다려 집으로 복귀하는게 최선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형제는 이렇게 서로가 같이 벌을 받을 때는 공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어릴적에 적과의 동침을 했습니다.
그것도 눈오는 날 홀라당 벗은 채로 말입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순수한 광경이면서 예술의 경지에 도달했지요.

동네 한바퀴를 다 돌만한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또다시 각개 약진을 반복하며
힘겨운 듯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 왔습니다.
아버지는 어디 가셨는지 안 보이고 어머님만 마당에 눈을 치우고 계셨습니다.
온몸은 번데기처럼 굳어 허리가 펴지질 않더군요.
나는 말도 제대로 나오질 않았는데 형이 얼어 붙은 입을 열었습니다.

"어~ 머~ 니!~.....아~버~디 어디 갔~더~여?"

형은 혀가 굳어 숨이 넘어 갈 듯 힘겨운 목소리로 어머님께 물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애써 웃음을 참으시며 내 던진 말씀에 우리는 기절초풍할 뻔
하였습니다.

"아버지?....아까 부터 사랑방에서 주무시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