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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들었던 지갑을 바꾸면서


BY 칵테일 2000-10-02





정들었던 지갑을 바꾸면서


어제는 남편과 함께 롯데백화점에 갔다.
일요일이라 일찍 깨기 싫어하는 남편을 거의 꼬시다시피해서 함께 나선 거였다.

마침 백화점이 세일이었고, 웬지 오늘은 나혼자가 아닌 남편과 함께 물건을 고르고 싶은 생각에서....

다른 것보다 지갑을 새로 사기 위해서였다.
지금 쓰고 있는 지갑은 하두 오래써서 귀퉁이가 낡았는데, 나는 무슨 영문인지 매번 새로 사러나가서도 바꾸지를 못하고 이때까지 오고 만 것이다.

그렇지만 어제만큼은 기어이 새지갑을 장만하리라 마음을 굳게 먹고 나섰다.

그리고는 몇 코너를 돌아, 결국 내 마음에 드는 검정색 지갑을 살 수 있었다.

지갑에 대해서는 참 내 나름대로 생각이 많다.

지금까지 쓰고 있던 이 지갑은 니니리찌것인데, 카드꽂이가 많고 동전넣는 공간도 넉넉하여 부피는 좀 나가지만 꽤 편한 지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지갑을 새것으로 바꾸려해도, 어떻게된게 여자들의 손지갑은 너무 얄상하게만 나오거나 아니면 손가방마냥 두둑하기만하여 영 마음에 쏙 드는 것을 고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어제는 엠쥐엠것과 가파치것을 두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드디어는 가파치것을 골랐는데....

엠쥐엠것이 크기가 좀 더 커서 그중 편하기는 하겠지만, 웬지 투박한 느낌이 들어 이번에는 그냥 국산인 가파치로 택한 것이다.
물론 가격도 국산이 3만원정도 쌌다.

막상 사서 집에 가져와 헌지갑과 새지갑을 교체하고 보니까, 마음 한구석이 쏴하니 비어온다.

그 지갑을 중간에 한번 바꾼 적이 있긴있었다.
그런데 같은 제품, 같은 디자인으로 하나를 새로 구입해서 처음 들고나간 날 공교롭게도 그 지갑을 소매치기당했다.

현금도 꽤 있었고, 수표에 각종 카드까지 손실이 이만저만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새로 산 지갑이 그대로 없어져버렸다는 허탈감에 꽤 심란했었다.

결국 다시 새 지갑을 사는 일을 뒤로 하고 다시 그 옛날 지갑을 썼는데(그당시는 그렇게 낡지 않았다!), 쓰다보니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훌쩍 지나버린 것이다.

남편은 가끔씩 낡은 내 지갑을 보면서 제발 좀 바꾸라고 성화였고, 아예 백화점 세일만 되면 이번에 제발 지갑 좀 가서 사라고 조르기까지.....

그런 끝에 새 지갑을 장만하고나니, 기분은 여러가지로 묘했지만 가방에 넣어둔 새지갑 가만히 꺼내 다시 한번 쓸어보게 된다.

이 지갑은 또 내 손에서 얼마나 살가운 정을 주고 내곁을 떠나가게 되려는고.

무엇이든 사람이고 물건이고 간에 정들면 이렇게 쉽게 내치지 못하는 것을, 그보다 더한 이별도 감당하고 살아낸 내 세월이 새삼 서글퍼지는도다.

누가 인생을 일러 짧다하는가.
이렇듯 짧은 듯 하여도 차마 긴 세월같아 마음에 묻어진 시절이 있음을, 먼 훗날 내 기억 흐려진 뒤에도 이처럼 다시 추억할 수 있으려는지.

그래도 오래도록 쓰던 내 옛날 지갑을 곱게 싸서 장 깊은 곳에 넣어두는 것은, 아직은 차마 버릴 수 없는 내 아쉬움이 남아있음에야!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