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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무 늦은게 아니길 바래요 / 특집 드라마 '빗물처럼'


BY 후리랜서 2000-11-13

사람도
비처럼 물처럼
흐를수만 있다면
가슴에 맺힌게
하나도 없을텐데...

SBS 창사특집극 '빗물처럼'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작가 노희경은 번번히 시청자들에게서 외면을 당하는
저주받은 작가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노희경메니아'들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드라마나 영화는 시청률이나 관객 동원수에 혈안이 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잘 팔리는 책이 반드시 좋은 책이 아니듯,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가 성공한 작품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 '바보같은 사랑'에서도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딱지를
훈장처럼 얻은 작가 '노희경'
고통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면서도 그녀의 숨은 결코
거칠지 않다.
어미 닭이 따뜻하게 알을 품어 병아리를 만들어 내듯이,
밑바닥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예리한 칼로 섬?하게
해부해 드러내 보여 주면서도,
항상 그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노희경의 시선을
나는 오래전부터 사랑해 왔다.

어릴때 목욕물을 데우던 가마솥에 빠져("내가 너무 작아서")
심한 화상을 몸에 입은 작부 미자(배종옥).
그녀는 웃음과 얼굴은 팔아도 몸은 팔지 못하는 여자이다.
술집을 찾은 남자중 누가 그녀의 흉칙한 몸을 탐하겠는가?

그런데 그녀에게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생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확실하게 정을 떼기 위해 남자에게
자신의 벗은 몸을 보여주는 미자...
화상을 입은 몸만 보면 남자들은 욕을 하며 떠나가 버렸었는데
오히려 그 남자는 도망가지 않고 "많이 아팠겠어요"하며
그녀를 안아 주더란다.
그렇게 그 남자는 그녀의 첫사랑이 되고 딸을 얻었지만,
얼마 후 그 남자도 여느 다른 남자들처럼 그녀를 떠난다.
징그러운 화상을 입은 여자와 아이까지 만들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했던 미자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그 옛날 원망하며 떠나 왔던(화상을 입혔다며) 고향 부모에게
억지로 아이를 내팽개치듯 떠맡기고 또 도망 나온다.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 부둣가 술집을 지키고 있는
미자에게 나타난 남자 지인(정웅인).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그 남자는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를
헤매는 자식과 그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울부짖는
어여쁜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어느 날 아내가 잠든 사이 자식의 산소호흡기를 떼어낸다.
그리고 난후 죄책감을 떨쳐 내지 못하고 아내와 별거 중인 남자.
그러나,이미 아내는 자식과 자신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남편이 대신 평생 지울수 없는 화인을 가슴에 찍은 것을 알고
"당신이 안했으면 내가 했을거에요" 위로하며 집에 다시
돌아오기를 애타게 원하지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남편은 쉽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을 멈추지 않는다.

딸이 사경을 헤매는데도 술집 작부라는 사실과 자식을
버렸다는 부끄러움으로 가까운 고향을 찾지 못하는 미자와,
자기 손으로 자식을 죽게 만든 죄책감으로 아내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지인.
밖으로 드러나는 화상을 입은 미자와 가슴에 씻을수 없는
화인을 찍은 지인은 서로에게서 위안을 느낀걸까?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밤새 품어주고 핥아 주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건 익히 필연이 아니던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준 미자와 지인은 허겁지겁
고향에 있는 딸에게로, 또 목놓아 기다리는 아내에게로
서로의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따스한 결말...
"우리가 너무 늦은게 아니길 바래요"
서로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귀향길에 마지막 나누는
두 사람의 인사가 밤새 내 가슴을 빗물처럼 젖어 든다.

"우리가 너무 늦은게 아니길 바래요"
사랑하는 사람을 오래 버려두지 말고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