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날짜: 2000/07/20 07:57
작성자 : 둘둘공 ()
아내가 어이없는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지금도 아내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기만 합니다. 스스로 밥 한끼 끓여먹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남편을 두고 떠난 심정이야 오죽했겠습니까 마는 난 나대로 아이에게 엄마 몫까지 해주지 못하는 게 늘 가슴 아프기만 합니다.
언젠가 출장으로 인해 아이에게 아침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출근준비만 부랴부랴 하다가 새벽부터 집을 나섰던 적이 있었지요.
전날 지어먹은 밥이 밥솥에 조금은 남아있기에 계란찜을 얼른 데워놓고 아직 잠이 덜 깬 아이에게 대강 설명하고 출장지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있나요?
그저 걱정이 되어 몇 번이나 전화로 아이의 아침을 챙기느라 제대로 일도 못 본 것 같습니다.
출장을 다녀온 바로 그날 저녁 8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이와 간단한 인사를 한 뒤 너무나 피곤한 몸에 아이의 저녁 걱정은 뒤로 한 채 방으로 들어와 양복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침대에 대자로 누웠습니다.
그 순간,
"푹!" 소리를 내며 빨간 양념 국과 손가락만한 라면 가락이 침대와 이불에 퍼질러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펄펄 끓는 컵 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 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무작정 불러 내 옷걸이를 집어 들고 아이의 장딴지와 엉덩이를 마구 때렸습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이불은 누가 빨라고 장난을 쳐, 장난을!"
다른 때 같으면 그런 말은 안 했을텐데 긴장해 있었던 탓으로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의 울음섞인 몇 마디가 나의 매든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들의 얘기로는 밥솥에 있던 밥은 아침에 다 먹었고, 점심은 유치원에서 먹고, 다시 저녁 때가 되어도 아빠가 일찍 오시질 않아 마침, 싱크대 서랍에 있던 컵라면을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선 안 된다는 아빠의 말이 생각나서 보일러 온도를 목욕으로 누른 후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붓고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출장 다녀온 아빠에게 드리려고 라면이 식을까 봐.. 내 침대 이불 속에 넣어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런 얘길 진작 안 했냐고 물었더니 제 딴엔 출장 다녀 온 아빠가 반가운 나머지 깜박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싫어 화장실로 뛰어들어간 저는 수돗물을 크게 틀어놓고 목놓아 실컷 울었습니다.
한참이나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와서는 우는 아이를 달래 약을 발라주고 잠을 재웠습니다.
라면에 더러워진 침대 보와 이불을 치우고 아이 방을 열어보니 얼마나 아팠으면 잠자리 속에서도 흐느끼지 뭡니까?
정말이지 아내가 떠나고 난 자리는 너무 크기만 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나는 그저 오랫동안 문에 머리를 박고 서 있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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