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일을 하면서 몇 번 계약서를 쓴 적이 있다.
어려운 시절에야 그렇다 치자. 처음에는 남편을 돕겠다며 급여없이 일했지만 어느정도 수익이 생기자 월급이란게 받고 싶었다.
일하면서 몇년 지나고나서 한바탕 크게 다툰뒤 내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나가버리겠다고 버티니 계약서를 써 주었다. 그리고 2년쯤 지나
그당시 했던 계약이 너무 약했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 입장에서 억울하다는 생각에 신상 계약서를 요구한 것이다.
그 계약서가 법적으로 얼마만큼의 효력이 있는지 잘은 모른다. 계약서를 쓸때는 공증을 거쳐야 한다는것도 몇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으니까.
그나마 계약서를 쓸때만 해도 순수했던거같다. 지금은 쓰라고 해도 쓰지 않을뿐더러 어차피 최악의 경우에는 남편을 이길 수 없으리란걸 안다.
무모한 도전도 자꾸하면 실없어 보이니 이제 더 이상 계약서 운운하는 따위는 하지 않는다.
계약서를 쓸때는 남편과 술 한잔하고 기분좋을때 내 쪽으로 유리하도록 만들었다.
굳이 계약서를 쓴 동기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만에하나 일을 하다 맘이 안맞아 갈라서기라도 한다면 눈앞이 아찔해지는 상황이온다.
최악의 경우 혼자 살 대비, 재산권 행사를 하는데 얼만큼 내가 회사에 기여했는가. 그러나 나는 정직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퇴사시
어떤 요구도 할 수 없게된다. 헤어지는 마당에 남편이 한푼이라도 더 챙겨줄리는 천부당만부당한 사실일테고.
그렇다고 아내 자격으로 재산분할을 한다면 접업주부 기준으로 측정할텐데 그렇다면 그간 회사에서 죽도록 고생한 보람이 없다.
여러가지 불리한 입장을 생각하니 나만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규모는 늘어나는데 월급도 못받고 퇴직금이며 실업급여등 불이익을 당할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름 머리를 쓰며
어떻게 계약서를 수정할까 고민했다. 그런 나를 남편은 비웃었지만 그 비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단언컨대 나홀로 승리의 미소를 지을 수 없다는걸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공증도 싸인도 없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계약서 두장은 지금도 화장대 서랍 어딘가 오붓하게 겹쳐져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