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창부수(夫唱婦隨)라네
“아유~. 혼자 집에 있으려니까 너무 심심해서.”
“사람 구경 좀 하려고 나왔어요.”
이건 사실이었다. 영감이 출근을 하고나면 나는 무료하고 사람이 그리웠다. 거기에 영감의,
“내려가서 ‘사랑방’으로 문을 열어 봐. 갈 곳 없는 마나님들이 놀러오겠지.”하는 말에 솔깃했다. 남편과 아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10년이나 묵은 먼지를 털고 가게를 열어주었다.
그랬다. 오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안면이 있는 마나님들의 눈인사도 받고 더러는 들어와 반색을 하곤 했다.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구동성,
“잘 했어요.”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10년을 보지 못한 얼굴들도 반갑게 다가왔다. 일부러 들렀다는 고마운 분들도 있었다. 물론 앉아서 잡담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도 참 즐거웠다. 세(貰) 없이 잡담 나눌 이런 공간이 어디메 있겠는가.
그런데 자꾸만 부추긴다.
“이왕 문을 열었으니 손님 받지.”
솔깃해진다. 까지것! ‘이왕에 문 열고 앉았으니 주문도 받아 봐봐?’
이렇게 시작한 영업이 제법 짭짤하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내 용돈은 싫컷 쓰고도 넘친다는 말씀이야. 아직은 제 살림에 정신이 없어서 에미 용돈 챙기는 녀석이 없으니 것도 괜찮네.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욕심이 생긴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이런 게로구먼. 차차 작업 시간이 늘어나고 욕심은 더 커진다. 몸에 무리가 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아침 기상에 몸은 천근이고 앉혀놓은 돌솥에 영감이 불을 붙여 밥을 익히는데, 나는 눈을 뜨고도 누워있는 배짱도 생긴다. 아이들이 작업은 그만두고 ‘사랑방’으로나 쓰라고 성화다. 그러나 ‘배운 도둑질’이란 무서운 게다. 주머니가 두둑해질수록 내 욕심은 도를 더한다.
이제는 주일에 두 번 다니는 강의도 벅차다. 그러나 강의는 절대로 포기하지 못한다. 만학으로 얻은 그야말로 유일한 ‘배운 도둑질’이 아닌가. 교회에도 맡은 직책이 있으니 최소한의 자리는 지켜야 한다. 당연히 잦은 몸살에 앓는 소리가 잦아지고 내 어린양은 극에 달한다. 영감의 아량에 의구심마저 든다. ‘저 영감이 날 아래층으로 내려보낸 게 작전이었어?’ ‘그럼 나만 부려먹고 자기는 뭐하자는 겨?’
누구처럼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허긴. 시방도 걷는 운동이 길어지면 걱정스럽긴 하지.
아침에 마당에 내려서다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굴. 마당에 100여개의 화분이 줄을 섰다. 요즘 며칠 따스하더니 화분마다 움을 틔운다. 천사의 나팔, 라일락, 사랑초, 목단, 가시선인장 등. 정신을 놓고 시들어가던 고무나무도 생기가 돈다. 이름도 모르는 화초가 화분을 채웠네. 영감은 내가 내려간 사이에 이걸 가꾸고 있었던 게다.
“볼품 없는 화초나 화분은 없애요.”하는 내게 영감은 늘 말해 왔다.
“화분은 아무래도 괜찮아. 화초로 그 생명을 보는 거지.”
“화초는 돈을 주고 사는 게 아냐. 서로 나누어 키우는 거야.”
“나는 촌놈이라 멋보다는 화초의 생명을 보는 게 좋다.”
그렇다. 그이는 볼품도 없는 화분이나마 풀이라도 꽂는다. 화초를 나누어 주기도 잘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했던가. 이제 답답한 마음이 싹트려하는데 영감은 용케도 내 맘을 추슬러 준다. 아무 것에라도 취미를 가졌음이 보기에 좋다. 그것이 화초를 좋아하는 마누라를 위한 일이라면 참 좋으련만…. 워낙 말이 없는 영감이니 그래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던 오늘 비가 내린다 하니 화초가 욱 자라겠다. 그리곤 머지않아 내 마당엔 숫한 꽃이 피게 생겼다. 아~! 좋다. 이런 걸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했겠다?!
영감의 의도 속에 묶인 건 아닐까? 가끔은 이렇게 바람도 쏘이며 환영도 받고^^
(영감이 알면 화 내겠다 ㅋㅋㅋ,) (노인대학에서 강연 중.- 제목: 우아하게 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