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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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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첫 번째 말다툼2


BY 만석 2012-02-11

 

그들의 첫 번째 말다툼2


이럴 땐 못된 시어미의 근성이 나오게 마련이지. 못난 넘.

‘그러게 잘못을 알려주면 얼른 알아차리는 척했으면 좋잖아!’라고 왜 말 못해.

“나하고 말하고서 자. 말 좀 하고 자라고.”

아들이 누운 모양이다.

“나하고 말하고 자라고.”

“히히히히.”

에구. 참으로 못났다. 내 아들이지만 참도 못났구먼.

“웃어? 오빠는 이게 우스운 일이야? 오빠는 지금 어머니 앞에서 나를 짓밟았다는 말이야.”

어미를 쫓아 들어간 손녀가 분위기를 알아 챈 모양이다. 울음을 터뜨린다.

“내가 웃었으면 그만 해야 되는 거 아냐? 웃었으니 그만하자고. 앞으로 잘 못된 건 누구 앞에서건 지적할 거야. 잘못된 건 고쳐!” 강도가 제법 세다. 에구 사단이 크게 나겠네. 결혼 뒤 처음으로 부부가 다투는 걸 보고 있다. 며느리가 우는 아이를 안아다 방문 밖 거실에 내놓는다. 아이를 제법 세차게 내려앉힌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앙탈이다. 할미에게 SOS의 눈길을 보낸다. 마음이 쓰리다. 아기를 안아 오고 싶지만 참는다. 아기가 있어야 싸움을 끝이는 데에 도움이 될 테니까.


“얘들이 지금 애기 앞에서 뭣들 하는 거야. 나, 떡국 먹인 거 얹히겠다.”

이럴 땐 어른도 안 보이는 법이다. 공연한 소리지. 또, ‘시어미 앞에서…’라는 엄포도 금물이다. 어~라. 그게 아니네. 며느님이 밖으로 나갈 태세다. 알량한 시어미의 엄포보다 요럴 땐 손녀 딸아이를 파는 게 제격이지.

“추운데 어딜 나가려구. 애기 잠 온다. 고모 방 비었으니 데리고 들어가서 너도 한 잠 자고 애기도 재워라.” 엄포보다는 달래고 사정하는 무드가 제격이지.

대구도 없이 아기를 안아 들어가더니 누운 아들 옆에서 아기를 재우는 모양이다. 흥얼흥얼 자장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됐다. 저만하면 저도 마음 추스르고 잠이 들겠지. 미처 못다 먹은 떡국이며 김치그릇을 치우고 방으로 들어와 컴 앞에 앉는다.


잠시 뒤에 조용하게 노크 소리가 난다.

“어머니. 잠깐 나갔다 올게요. 다녀오겠습니다.”
“추운데 어딜 가. 그냥 애기 옆에서 한잠 자거라. 나가도 시원찮기는 마찬가지야.”

“잠깐이면 되요.”

뭘 하는데 잠깐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이 울어서 벌겋고 연방 눈물이 주렁주렁 열린다. 가슴이 아프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 이게 우리의 여인네가, 아니 한국의 여인네이기에  결코 어쩌지 못하는 숙명이 아닌가. 나도 눈물이 돈다. 그녀는 시방 어려서 돌아가신 제 친정어미 생각이 간절하겠지. 따라 일어나서 현관에 엎뎌서 운동화 끈을 매는 며느리의 얄팍한 등을 두 손으로 감싸 안는다.

“엄마가 사랑해. 내가 사랑해. 난 네 편이야. 오빠랑 싸운 건 금방 잊혀진다. 나하고만 싸우지 않음 되는 거야. 추운데 금방 들어와. 애기 깨면 어미만 찾아. 나 좀 보고 가. 나 얼굴 좀 보여주고 나가.”

사실은 눈물 글썽이는 내 눈을 보여주고, ‘내가 네 편’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녀의 눈에 더 커다란 눈물방울이 주렁주렁 맺혀 흐른다.

“어머니. 저 많이 속상해요.”

“그럼. 그럼. 알지. 알아.”

내가 뭘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시방 그녀의 마음이 많이 상해 있다는 건 알지.

이럴 때 붙잡아놓으면 역효과지. 나가서 찬바람이라도 쏘이다가 아기가 깼을라 싶게 걱정을 하게 하는 게 나은 법이다. 내 앞에서 저를 나무랬다고 아들에게 대들던, 며느리의 객쩍은 마음은 깡그리 잊어버린 채다. 며느리의 가냘픈 몸이 후들거리는가 싶다.  

“춥다. 금방 와. 애기 불안해서 금방 깬다. 한 바퀴만 돌고 얼른 들어와아.”

누가 잘못을 했던 시방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나도 오랜 날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신혼에 우리 부부는 참 많이도 다투었다. 남편은 워낙 말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단의 원인은 언제나 그이의 과음이었기에, 큰 소리를 치는 쪽은 나였다. 돌아가신 시어머님 생각이 난다. 시어머님은 아마 그 성미에 참을 만큼은 참고 한 마디 하셨을 테지.

“똑똑한 여편네가 모자라는 남편에게 지는 척도 좀 하고 살아라!!!”

난 그때 크게 웃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왜였을까. ‘똑똑한 며느리’라는 시어머니의 표현이 흡족해서였을까. 아니지. 시어머님이 옆에서 내 고함소리를 듣고 있다는 걸 그때에야 의식했기 때문에, 아마도 객쩍은 웃음이었겠다. 아, 그때 시어머님은 지금의 나만큼 속이 상하셨겠지. 시어머님이 그립다. 그러고 보니 나도 며느님 속이 풀리면 한 마디 해야겠는 걸.

“아무리 그렇기로 시에미 앞에서 너, 그렇게 큰소리 쳐도 되는 겨? 어른 앞에서….” 

아서라 아서. 내 속만 썩자. 또 못 된 시어미의 근성이라 하겠지. 그래도 내 며느님은 눈물을 달고도 깍듯이 인사를 하고 나가지 않았는가. 나는 그러지도 못했지?! 성난 당나귀처럼 문을 박차고 나갔었지.


그 저녁. 며느님이 전화를 건다.

“어머니. 문 좀 열어주세요.”

에구구. 대문 밖에 서있는 모양이다. 어머나. 문자도 보냈네. ‘어머님. 문 좀 열어주세요.’ 아이가 잠에서 깰라 싶어서 며느님은 아이가 자는 시간에는 대문의 벨 대신 문자를 보내곤 했지. 들어선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주방으로 들어가 쌀을 퍼 씻는다. 아들도 그 저녁,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설거지를 한다. 그리고 아이를 짊어지고 부부가 밤 산책을 나선다. 이건 오늘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늘 그렇게 해 왔던 그들의 일과 중의 레퍼토리다. 아마도 건설적이고 현명한 대화가 오고갔을 것이다. 자는 아이를 눕히느라고 아들은 아이를 받쳐 들고 며느님은 요를 피느라고 분주하다. 이렇게 아들부부의 첫 번째 말다툼은 끝이 났다. 그 뒤로 오늘까지 부부는 매일 맑음이고, 이시어미는 덩달아 매일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