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많이 컸다~! 2
다음 날.
아침밥을 얻어먹기는 그른 것 같고. 밥을 지어 영감과 마주 앉았으나, 우리는 한 마디도 없이 수저만 오르락내리락. 도무지 할 말이 없다. 아들이 부스스 일어나서 나간다. 뭐라고 한 마디 물어야 할 것 같다.
“쟤 괜찮은 거니? 약이라도 사다 줘라.”
“죽겠대요.”
‘죽겠을 짓을 왜 해?’ 목구멍까지 오르는 일성을 목젖으로 꾹꾹 눌러둔다.
주일이기에 아침예배에 참석했으나 기도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여느 날 같으면 점심도 교회에서 해결하고, 오후 예배까지 마치고 집엘 오지만, 오늘은 절대로 안 되는 날이다. 며느님이 아직 누웠을 것이니 식구들의 점심을 챙겨야 한다. 권사님들도 집사님들도 왜냐고 묻지만, 며느님이 술병이 났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시장에 들러서 자반 한손을 사들고 집으로 뛴다.
집으로 돌아오니 며느님이 일어났는가보다. 두런두런 건너 방에서 소리가 난다. 자반을 싱크대에 올려놓고 안방으로 들어온다. TV를 보던 영감에게,
“에미 일어났어요?”하니 돌아보지도 않고 가볍게,
“응.”한다.
“뭐래요? 잘못했대요?”
“응.”하고 만다. 더 물어서 뭘 하겠는가. 상한 속이나 더 긁는 격이 되겠지.
시방 며느님의 그 속도 속이 속이겠는가. 이렇거나 저렇거나 속은 달래야 하겠지. 점심은 내가 해야겠다. 밥을 안치려고 돌아서는데, 바람이 불면 휙 꺼질 것 같은 허깨비가 방문 밖에 섰다. 며느님이다. 나도 며느님도 말없이 한참을 서로 바라보고 섰다. 며느님은 시어미가 먼저 무슨 말이건 하길 기다리는 것 같다. 내가 무슨 말을 해.
“어머님. 죄송해요. 오빠가 양주라고 괜찮다고 자꾸만 마시라고….
“….”
“죄송해요.”
“너 많이 컸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무슨 의미였는지도 모르겠다.
“죄송해요 어머님.”
“다음에 이야기하자.”
다음이 언제인지는 나도 모른다. 오늘까지 영감도 말이 없고 나도 다시는 그 일을 입에 담지 않는다. 내가 그녀를 좋은 마음으로 다독일 수 있을 때, 그녀를 완전히 용서할 수 있을 때, 아마 그때가 지금 말하는 그 ‘다음’이 되겠지.
그런데 쉽게 용서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내 집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 않은가. 차라리 영감이 입을 열어,
“집구석이 망조가 들었어. 내 집구석이 언제부터 이리 됐어!”라고 한 마디 한다면,
나는 아마 이리 말 할 수도 있었겠다.
“조용히 지나가요. 한 번이니까. 잘 못했다 하잖우. 요새 애들이 다 그렇대요.”했겠지.
“남들은 어쨌든 내 집에서는 잘대로 안 되지!”하면 나는 그이의 입을 막으며,
“아이고. 소리가 너무 커요. 남들이 들어요. 조용조용하세요.”했을 것이다.
아마 영감은 내 마음을 저울질 하는 모양이다. 시어미 마음을 더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 같다. 내가 큰 병을 얻고부터 우리 집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나는 오히려 영감이 술을 마신 날이면 바짝 긴장을 한다. 아니, 아들 내외도 그렇겠다. 술이나 한 잔 들어가야 입을 여는 양반이니 말이다.
“너희들 이리 좀 들어와라.”하는 날이면 큰 사단이 아닌가. 양 같은 그이도 일단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기질이 있다. 며칠 사이 년말모임에 다녀온 영감이 술이 취해 오는 날이 여러 번 있었지만, 다행히도 별 일 없이 지나간다.
며느님은 며칠, ‘나, 죽었어요’하고 산다. 아기가 잠만 깨면 잽싸게 안방으로 들여 민다. 일단 아기가 다시 낮잠이라도 들 때까지는 아무 일이 없을 테니까. 우리가 아이 앞에서 그 어미를 나무랄 만큼의 악질시부모는 아니걸랑. 집안의 이상기류는 아랑곳없이 아이는 음악에 맞추어 그 고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춤을 춘다. 영감도 입이 벌어지고 이 할미도 입을 연다.
‘그래라. 내 손자가 행복하다는 데에야.’
‘그녀는 저리도 행복한 내 손자 녀석의 어미 아닌가.’
‘저도 시집살이가 쉽지는 않았겠지.’
‘시아버지가 부드러운가 시에미가 녹녹한가.’
‘년상의 손아래 시누이가 수월 하겠는가 삼순이 밥 먹이기는 쉽겠는가.’
‘저희들 저녁밥 먹는 모임에도 어른들 진지를 챙겨놓고 나가야 하니 속이 터지지 터져.’
‘저희들만 고기 먹은 게 미안하니 한 점이라도 들고 들어와야 맘이 편할 것이고.’
‘뭐 하나 먹고 싶어도 그거 하나 먹자고 대여섯 개를 사기도 어렵겠고.’
그래저래 잠깐 잊자 하고 한 잔 홀짝 했을 것이고, 혀끝에 감도는 단 맛에 두 잔째 홀짝 했을 터이지. 못 마시는 술에 두 잔으로 정신 놓기 십상이니, 이젠 잔을 셀 정신도 없이 술이 술을 청했겠구먼.
나도 할 말은 있다.
‘내 의도도 아니게, 며느님 모시고 살기는 쉬운 줄 아는 겨?!’
나는 이 한마디면 족하다. 더 말을 길게 하자 하니 자식 흉이다. 며느님도 자식인 데에야. ‘내 밑 들어 남 보이기’가 아니겠는가. 본 적도 없는 어느 며느님이 바로 전에 올린 내 글에다가,
‘제발 부탁합니다. 그냥 넘어가 주세요.’하는 댓글을 달았기에 내 속이 쓰리다. 내 며느님의 고충을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알만 하다 하니, 차라리 내 가슴이 아프단 말이지. 두 딸을 가진 어미로, 그래도 복이 많아 나 같은 ‘악질시부모’를 만나지 않은 게 얼마나 큰 복인가 말이지. 닫자. 그리고 덮자. 입도 닫고 마음도 덮자. 그날엔 내 아들도 곤죽이 됐었으니 며느님만 몰아세울 일은 아니지. 더욱이 내 며느님이 ‘막 되먹은 며느님’은 아니질 않은가. 시부모의 말없음에 더 깊은 생각을 할 터이지. 아~. 오늘 만석이의 날씨는 아주 맑음이야.
그녀들의 출현으로 우리의 여생이, '더는 행복할 수가 없음'으로 바뀌었다.
오늘도, '더 무얼 바래.'하는 마음으로 모녀를 지켜본다. (내 손녀 딸아이를 단장시키는 며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