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님, 내 막내를 부탁해
“따르릉~. 따르릉~!”
막내 딸아이다.
“그새 도착했니? 집은 잘 있지?”
“집이야 잘 있지요. 집안도 어질러놓은 그대로 잘 있고요. 호호호. ”
“잘 갔으면 됐다. 집안은 쉬엄쉬엄 치우고 어서 쉬어라.”
명절 전날 새벽 대구의 시댁으로 향해서, 다음 날 친정이라고 우리 집으로 직행을 한 딸아이. 당연히 집이 정리 되지 않았을 건 뻔하다.
“또 두 노인네만 남았구려.”
“그래두 니네가 이틀 밤이나 자고 가서 아주 좋았다. 짜장면이랑 닭강정 값은 뺏겼어도.”
“하하하.”
설 다음 날, 차마 두 늙은이만 두고 떠나기가 안쓰러웠나 보다. 하루 밤을 더 머물겠다더니, 그 저녁에 ‘고스톱’을 치잔다. 모처럼의 청이니 영감도 좀 앉아 주면 좋으련만 굳이 싫단다. 요를 내다 판을 만들고는 엄마라도 앉으란다. 내가 뭘 알아야지. ‘육 백’을 아느냐 ‘민화투’는 아느냐 하더니, 결국 나더러 이 기회에 육백을 배우란다. 나이 칠십을 너머서 그걸 배워? 그러지. 해 보지, 뭐. 그렇게 벌린 화투로 새벽 3시를 넘겼겠다?!
처음의 팥빙수 내기에서는 슬쩍슬쩍 져 주더구먼. 네 번째부터 본 께임이 시작되자 내외가 작당을 했는가. 내리 또 내리 나를 이겨며 골탕을 먹인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닭강정도 짜장면도 다음 날로 찜을 하고는 판을 접는다. 설마 찜해 놓은 닭강정과 짜장면 값을 나더러 내라고 떼를 쓰지는 않겠지? 모르긴 해도, 주문이야 내게 미루어도 계산까지 이 장모에게 떠넘기지는 않을 게야. 꿈이 너무 야무겼나? 크크크.
차 창문을 열고는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떠난 딸아이가, 유쾌한 목소리로 전화를 한 게다.
“엄마. 있잖아요. 이제야 엄마네 집에 다녀온 것 같아요. 그래서 기분이 참 좋아요.”
“???”
“오빠 네가 엄마랑 같이 살 때는, 엄마 네가 아니고 오빠 네 집에 가는 것 같았어요.”
“그랬어?!”
대답은 그렇게 단답으로 했지만, 내 머리는 꼬리를 물고 먼 옛날로 거슬러 오른다. 우리는 실향민이었다. 학자 출신의 아버지는 경제력을 잃고, 우리는 큰오빠 내외에게 얹혀 사는 지경이었다. 결혼을 하고 이런저런 일로 친정을 찾지만 이미 그곳은 친정이 아니었다. 완벽한 오빠네 집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결혼을 한 딸이 친정에 드나들 땐, 오빠나 올케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편하게 드나들 수 있게 하리라 마음 먹었었다.
그러나 큰아들이 결혼을 하면서 두 방을 점령하니, 그게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는 말씀이야. 결혼 5년 차에 큰아들이 살림이 나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방을 재정비 했다. 결혼을 해서 살다보면 가끔은 혼자 쉬고 싶을 때가 있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딸아이는 아직은 아니라 했다. 그러더니 이제야 엄마 집에 다녀온 기분이라 한다. 그러니까 아직은 혼자 올 일은 없지만, 이제야 제대로의 친정 맛이 난다는 이야기겠다.
그랬겠다. 아들 네와의 동거가 나에게만 불편했던 게 아니었구먼. 그래. 지금은 그렇다치고, 내가 없는 머지않은 그날엔 어쩌지? 낭패로다.
어이, 며느님~! 내가 말했쟈?
“네게 보림이가 있어서 행복한 것처럼, 보림이의 막내 고모가 내게는 보림이.”라고.
며느니~임. 내가 없는 훗날에, 내 보림이를 잘 부탁하네.
왜 이리 안 일어나는 겨? 모녀는 젯밥에 더 눈독을... 보림인 시방 세배돈 점검중
(맘이 급한 보림이 살~짝 ㅎㅎㅎ) (젯상도 물리기에 냠냠ㅋㅋㅋ) (오늘은 배춧잎이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