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이 샘솟나?
지난겨울 먹다 남은 동치미 무가 아까워 채썰기를 합니다.
물에 살짝 헹궈 갖은 양념에 무쳐내면 입맛 없을 때 먹기 좋거든요.
파, 마늘, 설탕 조금 넣고 들기름도 찔끔 따랐지요.
마지막으로 깨소금 탈탈 뿌리려고 양념 통을 열었는데, 세상에나! 한 톨도 없습니다.
실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채워놓질 못한 것입니다.
버무리던 손길 멈추고 냉동실을 뒤집니다.
앞에 있는 것부터 차례로 들춰내고, 서랍을 열어봐도 통깨담긴 봉지가 없네요.
아래 위 얼린 양념을 이것저것 보려는데, 전부 친정어머니가 보내주신 것들뿐입니다.
고춧가루뭉치도 몇 개나 되고, 완두콩 얼린 것에부터 청국장까지 냉동실은 어머니로 꽉차있습니다.
그나저나 두어 번을 훑어봐도 통깨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나중에 마트에서 사와야 할 것 같습니다.
냉동실 문을 막 닫으려는데, 서랍 칸 구석에 작은 통깨봉지 두 개가 보입니다.
볶아서 담긴 것이라 절구에 콩콩 빻기만 하면 됩니다.
통깨봉지 꺼내며 혼잣말을 합니다.
‘에휴, 엄마한테 통깨 좀 보내 달라 해야겠네!’
꼭 맡겨놓은 거 주문이라도 하는 것처럼 당당합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참 나쁘고 고약한 딸년입니다.
생전 전화도 안 하고 찾아뵙지도 못하면서 양념이 떨어지자 엄마를 떠올립니다.
자식은 부족한 것이 생길 때 부모를 찾고,
부모는 넘치는 것이 있으면 자식생각을 하나봅니다.
얼마 전, 친정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지요.
벨소리 듣고 수화기 펼치며 했던 저의 첫 말은, “응..., 엄마 왜?” 이거였습니다.
저의 버르장머리 없는 말에 “왜긴, 니가 하두 전화를 안 해서 내가 했지!” 하시는 어머니.
곧이어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씀.
“쌀 방아를 찧었는데, 네 생각이 나서..., 너 쌀 떨어지지 않았니? 언제 와서 가져가라구.”
먹을 쌀이 많아지니 자식 챙기려 하시고, 딸은 깨 가루 떨어지니 엄마 생각을 합니다.
깨소금을 마지막으로 뿌리고 조물조물 무쳐 접시에 담았습니다.
내친김에 친정으로 전화를 걸었지요.
엄마와 나누는 몇 마디.
역시나 떨어진 거 없느냐. 고춧가루는 남았냐 하십니다.
올봄 초에 어머니도 그러셨지요.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서 콩죽을 쑤셨다고요.
넘칠 때마다 퍼주신 시어머니가 생전에 좋아했던 콩죽을 만들며 고루고루 피붙이가 떠올랐을 겁니다.
할머니의 애지중지 손녀딸인 제 생각을 제일 많이 하셨겠지요.
“엄마! 고춧가루는 아직 많은데, 나 깨소금이 없어요. 히히히”
나이 먹은 중년의 딸이 떼쓰듯 응석을 부립니다.
저는 앞으로 얼마동안이나 친정어머니에게 양념을 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디서 샘이라도 솟는 양 당연하게 얻어먹는데 말이지요.
정말 감사해야 할 것은, 아직도 어머니가 존재해 있다는 그 자체인 것을.
끝없이 샘솟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버무려진 저녁식탁을 대하며,
내 이름 또한 ‘어머니’인 것에 행복이 밀려옵니다.
먼 곳에서 공부하는 딸에게 오늘은 편지라도 한 통 보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