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김치
지난 금요일아침 학교에 가기 전, 세수를 하러 화장실 갔던 유뽕이가 토하기 시작합니다.
전날 밤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걸 알았던 엄마가 이마를 짚어봅니다.
“어? 열이 있는 것 같네!”
더운 여름 날씨라 실내 온도가 높아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확실히 미열이 있는 것 같았지요.
학교에 가서 고생하고 심해질 것을 염려해 녀석에게 물어봅니다.
“유뽕아! 학교 가지 말까? 아픈데 집에서 쉬자!”
얼씨구나. 좋아할 줄 알았는데, 펄쩍펄쩍 뛰면서 말하네요.
“싫어! 학교 갈 거야!”
통학버스 타러 나가는 골목길에서도 엄마는 자꾸 유뽕이 이마를 만집니다.
안심이 되지 않아 담임선생님께 당부의 전화를 드렸지요.
혹시라도 증상이 심해지면 즉시 연락을 달라고.
오전 열시가 넘었을까요. 엄마의 핸드폰이 울립니다. 선생님의 전화였어요.
유뽕이가 교실에서 또 한 번 토했다는 겁니다.
엄마는 급하게 차를 몰고 학교로 달려갔지요. 기운 없이 어깨 늘어뜨린 유뽕이가 선생님 손을 잡고 나옵니다. 눈이 쑥 들어가고 얼굴빛도 핼쑥합니다.
아픈 아들 데리고 병원과 약국을 들러서 집으로 왔는데 열이 오르더니 바닥에 드러누워 앓기 시작합니다.
아침도 다 토해내고 먹은 게 없는데 측은하기만 하네요.
먹보아들인데 도통 아무것도 먹으려 하질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소고기스프를 끓여준다니 먹겠다고 합니다. 겨우 몇 숟가락 넘기다가 다시 방바닥에 누워버립니다.
물수건과 얼음주머니 번갈아 대며 열을 식혀주다가 아들 옆에 누워 말 걸어 봅니다.
“유뽕아! 엄마가 간호사야! 엄마가 이렇게 해주니까 금방 나을 거지?”
엉뚱한 대답만 합니다.
“아빠는 의사야!”
아마도 엄마가 간호사가 되고, 아빠는 의사역할이라고 말하는 모양입니다.
잘 아프지 않던 녀석이 덜컥 앓아누우니 집안이 조용하기만 합니다. 나태했던 엄마 노릇을 이때다 싶게 해보느라 엄마는 다시 열이 오르는 밤에도 쉬지 않고 물수건 갈고 해열제 먹이며 간호를 했지요.
약 덕분인지 아니면, 간절한 엄마의 간호 효과였는지 토요일 아침이 되자 유뽕이 얼굴에 생기가 돕니다. 눈도 반짝거리며 말썽거리를 찾아다니네요.
아침엔 부드러운 죽을 끓여 먹이고 점심때가 되어 먹고 싶은 걸 물어봤지요.
“유뽕아! 우리 뭐 먹을까?”
“짜장면이요!”
아이들이야 그거면 땡이지요.
짜장면주문을 하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마치 앓고 난 유뽕이를 축하하기 위한 식탁인 것만 같았지요.
배달된 짜장면 맛나게 먹으려는데, 단무지를 집어든 유뽕이는 한 입 베어 물고 한참 쳐다봅니다. 노란 반달 모양이었던 단무지가 초승달이 된 것을 젓가락으로 집어 허공에 높이 올리며 실눈만 뜹니다. 한쪽 눈을 찡긋 감고 오른 손 끝에 올려 진 초승달 단무지를 몰두해서 보더니 말하네요.
“엄마! 달 먹어요!”
그러고 보니 유뽕이는 하늘에 떠있던 노란 달을 머릿속으로 떠올린 모양입니다.
순간을 놓칠세라 엄마가 물어봤지요.
“우와! 달 먹는 거야? 근데, 달이 무슨 맛인데?”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나온 답.
“단 맛!”
소금기에 절여진 김치에 무슨 단맛이 있겠습니까. 녀석의 생각주머니에 노란 달은 그저 달콤하기만 한 맛이었던 것이지요.
평소 김치 먹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던 녀석인데, 단무지는 어적어적 잘도 씹어 먹습니다.
회복되어 건강한 주말을 보내고 다시 월요일 아침입니다.
씻고 옷을 입었는데도 학교가기엔 이른 시각.
엄마는 시원한 방바닥에 벌렁 누워 아들에게 팔베개를 해주었지요.
“유뽕아! 아직 시간 있으니까 여기 누워봐. 유뽕이 반달김치 좋아하지? 입으로 어적 깨물면 반달이 초승달 됐었지 그치? 엄마가 이따가 학교 갔다 오면 반달김치 해 놓을게. 잘 먹어야 돼. 알았지?”
“네에, 이렇게 반달이요!”
왼손 엄지와 검지 구부려 반원을 만들고 오른손 집게손가락 붙여 영어 알파벳 D처럼 만들더니, 반달이랍니다. 하여간 덩치만 컸지 엄청나게 귀여운(?)녀석입니다.
유뽕이 학교에 보내놓고 엄마는 궁리를 합니다.
마트에서 색소 물들인 김치 먹이느니 우리 집 김치냉장고를 뒤져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작년에 담근 동치미가 아직도 싱싱하게 있는 걸 기억해내고 무만 건져서 반달 모양으로 썰어야겠다고 묘안을 떠올리려는데 음흉한 웃음이 나옵니다.
미술학원에서 녀석이 돌아올 즈음.
엄마는 부랴부랴 무김치 꺼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유뽕이 좋아하는 반달을 썰어댑니다.
한 개 먹어보니 신맛, 짠맛, 다 느껴지네요. 단맛만 조금 첨가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정수기 물 섞어 과일효소 맛도 첨가하고 유리그릇에 담았습니다.
집에 당장 노란색 물들일 재료가 없어서 아쉽긴 한데, 적당히 꼬드기면 먹겠지요?
엄마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사랑스럽기만 한 녀석입니다.
주변 모든 물건과 음식에 까지도 의미를 담아놓는 유뽕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아들 같은 맘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자고 다시 손을 모으는 엄마입니다.
저녁밥 지으러 갑니다.
울 아들 맛나게 반달 김치 먹는 모습을 기대하며!
2013년 7월 8일
유뽕이만의 반달김치 만들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