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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86 - 마지막 예술제


BY 박예천 2011-11-29

        

          마지막 예술제

 

 

 

두어 달 사이 유뽕이 문제들이 숙제처럼 엄마 곁으로 달려왔습니다.

장애 재진단을 받으라는 통보도 왔고, 중학교 입학문제로 고민해야 했지요.

유뽕이의 경우는 지체장애가 아니기에, 처음 진단 당시와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있어지는 절차입니다.

전문기관에서 행해지는 검사는 세부적이고 다양했습니다.

그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요.

특별히 나아지지 않은 녀석의 상태를 아는 엄마는 별 기대 하지 않습니다.

 

장애아동부모연대 회의에도 참석하고 정말 바쁜 날들이었습니다.

정보교환을 하는 목적에서라도 부모모임엔 참석하는 게 좋지요.

솔직히 모임에 가는 일은 피하고 싶은 적이 훨씬 많습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을 듣고 있노라면 절로 맥이 빠지기도 한답니다.

아들을 일반중학교 보내놓고, 삼년 내내 가슴 저미고 울며 보냈다는 어느 어머니의 탄식을 듣습니다.

남의 일이 아닌 곧 유뽕이에게 닥칠 상황이고 보니 미리부터 먹먹해집니다.

시내에 위치한 학교는 남자 중학교이고 학급수도 엄청나게 많지요. 거친 남자아이들 사이 문제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예전 엄마 어린 시절에 다녔던 작은 남녀공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으로만 소망했지요.

기도하는 일 밖에 엄마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지난 수요일.

유뽕이 초등학교시절 마지막 예술제가 열렸습니다.

선생님이 멋진 치어댄스를 춘다며 알려주셨지만, 엄마는 불안한 마음만 앞섰지요.

집에 와서 조금이라도 연습하는 흔적을 보였다면 안심할 텐데, 전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예술제 시간이 다가오자 선생님이 부탁한 엄마 화장품 몇 개를 들고 학교에 갑니다.

대기실에 모여 있는 남자아이들 속에 훌쩍 키가 큰 유뽕이가 보입니다.

아침에 손질해준 헤어 젤은 마구 문질렀는지 다 망가져 있고, 선생님이 발라주셨다는 립스틱은 블라우스 프릴에 닦아버린 자국만 선명합니다.

그래도 엄마는 다시 녀석의 얼굴에 분칠을 뽀얗게 해줍니다. 입술연지도 분홍빛으로 발라주고요.

 

드디어 네 번째 순서인 유뽕이네 치어댄스 팀이 나옵니다.

쿵작쿵작 전주가 신나게 나오고 노래에 맞춰 아이들이 은빛 응원총채 들고 춤을 춥니다.

역시나 동작이 제일 어눌한 유뽕이는 오른쪽 맨 뒤에 숨듯이 가려져있네요.

세련되게 춤 잘 추는 아이들이 중앙무대를 장식합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어쩐지 그늘진 조명 끝에 삐죽이 서있는 녀석을 바라보는 일이 힘이 듭니다. 오랜 세월 단련되고 굳세어진 엄마 마음이 흐물흐물 눈가에서 녹아내립니다.

진짜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말이지요.

키가 제일 큰 우리 유뽕이는 아이들이 옮겨가는 줄을 놓칠세라 따라다니며 춤추네요.

한 박자 느리거나 부족한 몸짓이지만 크게 눈살 찌푸리게 만들지 않습니다.

댄스곡으로 나오는 노래가사를 들어봅니다.

전부다 엄마가 유뽕이에게 해주고 싶은 내용들입니다.

‘너는 나의 에너지~, 넌 나만의 엔돌핀~’

정말 그랬습니다.

녀석은 엄마의 힘이었고, 삶에 지친 엄마를 자주 웃게 해주었으니까요.

곧이어 2절로 나오는 노래에 엄마는 울다가 웃고 말았습니다.

‘무조건, 무조건이야! 무조건 달려갈 거야!’

유뽕이가 가는 길이라면 무조건 달려갈 것이라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가요였습니다.

아들을 향한 엄마의 사랑은 특급사랑이기 때문이지요.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달려가야 한다는 군요.

 

시골중학교 배정된 것이 기뻐서 울며 감사하던 날.

엄마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숨 쉬는 일 만큼이나 쉽고 하찮은 일이, 우리모자에겐 거친 산을 넘듯이 헐떡거려야 겨우 얻어지는 것이라는.

그러나 또 다른 진리 하나도 터득했지요.

보통의 사람들이 흔하게 넘겨버리는 흔한 일상에도, 우리 모자는 깊은 감동과 감사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도 감사한 삶을 가꾸라고 유뽕이를 선물로 주셨나 봅니다.

 

마지막 예술제를 무사히 마친 유뽕이가 대견합니다.

중학교 입학하면, 고등학교 들어가는 선뽕이 누나와 더불어 새 교복을 맞춰 입고 아빠도 모델로 끼어주면서 가족사진 하나 찍어볼까 합니다.

감사하기만 했던 2011년 한 해가 또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2011년 11월 29일

마지막 예술제를 떠올려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