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발소
어느 날 부터인가 유뽕이는 밥 먹거나, 욕실에서 나오면서 엄마에게 돈 주는 흉내를 냅니다.
“미용실아줌마! 여기요, 천원이요!”
가게에서 필요한 것 고르고 계산하는 연습을 시킨 이후에 그런 행동이 더욱 잦아졌습니다.
처음엔 가게 점원으로 전락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이젠 엄마가 먼저 장난 칠 정도로 유뽕이를 재밌게 해 줍니다.
밥을 다 먹고 일어나려는 녀석에게 손을 내밀지요.
“손님, 돈 주세요!”
“휴게소 아줌마, 잘 먹었습니다. 여기요!”
“이거 얼마 주시는 건데요?”
“천 원이요!”
밥 한 끼에 천 원 하는 식당이 있던가요.
유뽕이에게 제일 큰 화폐단위는 천 원입니다.
감자와 마늘을 사라고 스피커 울리며 동네 어귀에 트럭이 들어서면 녀석도 따라 소리칩니다.
“감자사요!, 마늘이 왔습니다!”
놀이에 흥미를 느끼라고 엄마가 맞장구를 칩니다.
“마늘 한 접에 얼마인가요?”
“네..., 천원입니다!”
녀석처럼 장사했다가는 다 망하고 말 것입니다.
감자떡 할머니가 골목마다 크게 외치는 소리.
‘감자떡 사요!’라는 억양도 유뽕이는 똑같이 강약 살려가며 따라합니다.
한 박자 늦게 공원길 사람들 다 들리도록 할머니 목소리를 흉내 냅니다.
엄마는 감자떡도 사지 않을 건데, 할머니에게 그저 죄송스러워 유뽕이 입을 막지요.
녀석의 목욕하는 날.
아빠는 자율학습감독 하느라 늦게 오신답니다.
하는 수 없이 엄마가 유뽕군의 때밀이로 임명되었지요.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거품까지 가득 풀어주었습니다.
신나게 거품놀이 하다보면 적당히 몸이 불어 때 밀기 딱 좋을 테니까요.
유뽕이는 대중목욕탕을 가지 않고 집에서 목욕합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예기치 못한 돌발행동을 일삼기 때문입니다.
원래 녀석의 때밀이 담당은 엄마였지만, 덩치가 커버려 아빠가 맡게 되었지요.
두 남자의 목욕하는 소리를 밖에서 듣다보면, 집안 전체가 들썩거립니다.
녀석은 꽥꽥 비명을 지르다가 까르륵 숨넘어가게 웃고, 이따금씩 혼내는 아빠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습니다.
밀어놓았던 점심 설거지를 끝내고 엄마는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큰 형아가 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로 녀석의 몸이 컸으리라고는 생각 못했지요.
팔 한쪽, 다리 한 부분마다 어찌나 무겁던지 때밀이 엄마 이마엔 땀방울이 송송 맺힙니다.
이렇게 힘든 일을 매주 불평 없이 해 온 아빠한테 조금 미안해졌습니다.
깨끗해진 몸 구석구석을 향기로운 비누로 마무리하고 욕실문밖으로 내보내려는데, 유뽕이가 갑자기 엄마 손에 뭔가 주는 시늉을 합니다.
“이발소 아줌마 여기요!”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주어 그럴까요.
오늘은 엄마를 이발소에 근무하는 직원으로 만듭니다.
“뭔데?"
"돈이요. 오 천 원이요!”
아마도 때밀이 아줌마한테 주는 수고비(?)인가 봅니다.
제 딴에도 힘든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천원에서 한 참이나 오른 가격이네요.
하긴, 요즘 물가도 올랐는데 진즉에 올려 줬어야 했지요.
“엄마가 이발소 아줌마야? 근데, 이발소 이름은 뭐야?”
솔직히 기대하고 물어본 말은 아니었습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유뽕이의 대답을 듣고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미소를 얼굴에 그려 넣어야 했습니다.
머릿속에 반짝 백열등이 들어오듯 환해졌으니까요.
녀석이 말한 이발소 이름이 뭔 줄 아세요?
“희망이발소!”
길을 걷다 어디쯤에서 봤을까요? 아니면, 녀석이 혼자 생각해 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참 잘 지은 이름이네요.
이름이 ‘절망이발소’이거나, ‘체념이발소’는 더더욱 아니어서 참 다행입니다.
희망을 갖고 달려가자는 유뽕이의 메시지 같아 엄마는 두 주먹 불끈 쥐게 되네요.
오늘 하루도 희망이발소(?) 꾸리느라 힘차게 달려왔더니 참 피곤하네요.
몸 하나로 다양한 직업을 소화하는 일.
역시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픽 쓰러져 눕고 싶은 곤한 가을밤이 알밤처럼 여물어 갑니다.
2011년 10월 3일
희망이발소 개업(?)하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