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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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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뿌린 씨앗이라고?(11) - 의지박약


BY 솔바람소리 2011-01-18

<<그들은 더 이상 젊지 않았고 견고한 사회에서 조금씩 겁을 먹기 시작했고

삶이 즐거울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이 없었으며.. .>> -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 중에서.

나는 겨우,

나이 사십을 넘겼을 뿐인데 들끓던 열정과 자신감을 지녔던 젊음을 잃었다. 그리고 만만하지 않은 사회에 거부감을 느꼈으며 삶이란 것이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즐거움보다 주구장창 주위를 맴도는 것 같은 절망, 그 끝없을 고통만이 앞서는 통에 겁쟁이처럼 계획 따위 세울 수가 없었다. 삶을 놓은 듯 하루를 겨우 연명하는 길거리의 노숙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나를 느꼈지만 크게 슬프지 않았다. 껍데기 육체만은 보통사람들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영혼은 남루한 비렁뱅이였다. 그 역시 또한... 부끄럽지 않았다. 아니, 실은 슬픔이나 부끄럼 따위 생각조차 못하는 멍청이로 전락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3년 가까이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고 확인한 뒤 가정을 떠나겠다던 친구가 그 자리만 맴도는 것을 한심하다고 꼬집어 지적할 수 없던 이유는 19년을 하루같이 징얼거리고 있는 나를 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만난 뒤... 나는 더한 멍청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축하를 위해 거리에서, TV에서 화려한 광경들이 찬란했지만 결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흥미롭지 않았다.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전해오는 문자들에 일일이 답장하지 않았다.

“아빈애빈 여전히 바쁘냐?”

엄마 말씀에 요즘 부쩍 외로움 타신다는 친정아버지는 조용히 입 닫고 살고 있는 딸의 상황을 아실리 없으셨기에 1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코빼기 보여주지 않는 사위에 대한 불만만 높이고 계셨다.

“바쁘지요...ㅎㅎㅎ 혼자 처자식 먹여 살리기가 어디 쉽겠어요?”

“아니, 그 돈 다 벌어서 어디 쓰는겨?!”

딸의 넉살에도 역정을 감추지 않으셨다. 처갓집 알기를 우습게 안다는, 지치지 않는 아버지의 자격지심은 성치 못하고 부족함 많은 딸을 둔 상처와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겨우 자식들 키워내며 깨닫게 되었다. 더는 딸이 귀한 집안에 고생모르고 자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고명딸이기에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순간부터 시시콜콜 조잘거리던 입을 닫게 되었다. 그것만이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유일한 효도라고 여기며.

“63빌딩 살겨. ㅎㅎㅎ”

“애들 방학은?”

방학했는데 어찌 여적 내려오지 않냐는, 의중엔 딸에 대한 섭섭함도 묻어있었다. 애들이 방학을 했어도 학교와 학원으로 바삐 다니는 통에 주말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양해말씀을 드렸지만 “어쩔 수 없지, 공부를 해야 한다니...” 하시는 대꾸엔 섭섭함이 배가 되어 있었다.

‘아빠... 사실, 나 요즘 많이 힘들어. 애들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서 살까? 이 인간, 여태 제대로 된 생활비도 준 적 없어. 난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든지 모르겠어. 예전엔 그렇게 아빠, 엄마 곁을 떠나고 싶어서 안달을 했는데... 지금 난 그 옛날이 얼마나 그리운지 몰라... 내가 대단한 줄 착각하며 자만심에 충만했던... 그래서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

딸의 응석같은 울부짖음이 목구멍을 타고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그 순간 짐작이나 하셨을까.

지금 내겐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시는 친정에 다녀와야 한다는 것이, 즐거운 기대감보다 드라마 촬영을 앞둔 연기자 같은 부담감을 지니게 되었다. 이제 내겐 더 이상 마음 편히 갈 곳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1월 3일 새벽 3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요란한 핸드폰소리에 잠이 깬 시간이. “여보세요” 잠결에 입을 열면서 서서히 정신을 차렸지만 비몽사몽을 쉬이 벗어나지 못했다.

“전화 받네?”

“......”

남편이었다. 큰 맘 먹고 새해 아침 떡국을 끓여놓고 식사하라고 불렀건만 술에 취해서 일어날 수 없다고 웅얼거리며 마다하던 그 사람이었다. 나를 한없이 힘겹고 지치게 하는 그 남자... - 2010년 12월 31일, 아이들과 몇 번이나 다짐을 하듯 약속을 했었다. 2011년부터 우리 행복하게 살아보도록 노력하자고. 그리고 맞은 1월1일이었다. 편안한 잠자리가 되기 바라던 심정이 욕심이었을까 소란스런 꿈을 꾸고 난 아침이 몸과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정신을 가다듬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제안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마음이 따스해질 수 있는 아침상을 차려야겠다던 전날의 각오를 되새겼다. 만둣국 하나라도 정성을 다해서 끓여주고 싶었다. 새해니까... 지긋지긋했던 지난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시작, 첫 계단을 내디디며 2011년은 달라지고 싶었다. 보일러설비사가 난방누수로 인해 며칠 동안 냉골에서 가족을 떨게 하고도 태연했던 남편을 고심 끝에 부르기로 결정했고 불렀지만 그는 오지 않았었다. -

남편은 매번 내가 양보를 하려하면 도발하려 했고 적개심을 품으면 무릎을 꿇곤 했다. 운명의 장난질인지, 아니면 남편의 장난인지... 그래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우린 그런 사이였다.

“아빈엄마...?”

“......또 술이야?”

남들이 한참 잠들어 있을 시간에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해대는 그 심보를 따진다고 정신 차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전화를 한사람이 당연히 맨 정신일리 없었다.

“조금 밖에 안 먹었어.”

“......”

“나 요즘 하루 1시간도 잠들지 못해서 큰일이다.”

“......”

“당신이 큰맘 먹고 밥 먹으러 오라고 했던 거 알어. 그날 내가 술 먹었다고 했는데 그냥 한 말이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