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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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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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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읊던 손님


BY 김미애 2008-11-19

시를 읊던 손님

김미애

 

‘천냥 생만두’가게를 하고 있을 때였던, 몇 해 전 어느 늦가을 밤의 일이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고 거리도 한산한데다 밤 10시가 넘으면 점포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는데, 그날은 만두 작업을 하느라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거리에 드문드문 가로등이 켜져 있기는 했지만 가로수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은행나무에 가려 그 빛이 희미하였고, 불이 켜진 점포라곤 우리 가게에서 조금 동떨어진 ‘깨미책방’과 ‘24시 김밥나라’ 두 곳뿐이었다.

우리 가게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딸린 상가라 여차하면 집에 갈 수 있으므로 마음의 부담이 없긴 하지만, 가게의 앞면 전체가 휑하니 개방되어 있어서 어떨 땐 너무 늦은 시간에 나 혼자 있기가 더럭 겁이 날 때가 있다.

한번 무섭다는 생각이 들면 금방이라도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 불쑥 들어와 만두를 팔아봤자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다 내놓으라고 위협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날도 아직 할 일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무섬증이 오싹하게 느껴져서 얼른 집에 들어가려고 서둘러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 걸음걸이가 휘청거리는 50대의 남자 손님 한 분이 가게 앞에 멈춰 서더니 만두 만 원어치를 달라고 했다. 만두가 여덟 개 들어있는 한 판에 천 원이니 만 원어치면 열 판이고, 개수로는 팔십 개나 되므로 문 닫기 직전에 큰 손님인 온 셈이다.

밤늦은 시간에 만두를 사러 온 손님들 중에는 더러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따끈따끈한 만두라도 사다가 들이밀며,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무마시키려 한다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 손님 역시 그런 마음이었을까?

어차피 집에 가서 데워먹을 것이니 그냥 포장해달라고 하였다. 만두 열 판을 찌려면 두 개의 찜통에 각각 다섯 판씩 올려서 쪄야 하는데 그냥 달라고 하니 만두를 쪄야 하는 수고로움과, 쪄지길 기다리는 시간도 번 셈이라 부담 없는 마음으로 도시락 다섯 개에다 나눠 담고 있었다. 그런데 저 아래 전봇대 쪽에서 얼른 가자고 재촉하는, 얼큰하게 술에 취한 목소리가 바람막이로 쳐놓은 비닐 휘장 틈으로 스며들어 왔다. 만두를 사러온 그 손님이 혼자 온 줄 알았는데 조금 뒤처져서 걸어오다 전봇대에 기댄 채로 기다리고 있는 동행이 있었던 것이다.

만두를 데워서 주지 않고 도시락에 그냥 담기만 하는 것인데도 굼뜬 손놀림으로 꾸물거리고 있으려니, 갈지(之)자 걸음으로 스텝을 밟는 발소리와 함께 연신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따, 행님! 빨리 가잔께라! 멀라고 고로코롬 많이 산다요?”

“내일 벌초하러 가야 한다고 아까 걸어옴스로 내동 말항께 그라네! 서울에서 형제들이 다들 내려왔다고 한디, 시방 우리 집에 모여가꼬 고스톱 침스로 논다고 함마. 그란디 놀다본께 출출하다고 함스로 아, 나더러 만두 좀 사오라고 안 헌가! 어이, 그랑께 자네도 나랑 같이 우리 집에 쬐게 갈랑가?”

“아따메! 행님네 식구들이 벌초하러 가자고 모였담스로 밤늦은 시간에 뭣한디 내가 그 자리에 꼽싸리 찡긴다요? 그라고 나는 배부릉께 안 묵을라요. 그나저나 진짜 이 많은 걸 누가 다 묵은다요?”

“오늘 다 못 묵으믄 내일 묵제. 뭔 걱정이당가?”하며 사투리 범벅인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진즉 가게를 닫고 집에 가버렸더라면 그 손님도 헛걸음했을 테고 나 또한 만두를 못 팔았을 텐데 늦게까지 가게에 남아있었던 보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입이 귀밑까지 벌어져서 만두를 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일행인 남자가 뭐 하러 그렇게 많이 사냐며, 자꾸 얼른 가자고 초를 치고 있어 무척 얄밉게 느껴질 즈음, 웬일인지 더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고 서 있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행님!…… 내가 오늘 누이에 관한 시를 지었는디라우…….”하며 눈을 지그시 감더니 자신이 지었다는 시를 줄줄 읊었다. 술에 찌든 혀는 꼬부라졌어도 목소리만은 낭랑하였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초면인 사람인데도 시를 지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귀가 솔깃해져서 얼른 가자고 재촉했을 때의 얄미운 마음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그 나이에 시를 읊조리는 사람을 내 주변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는 데다, 이 전까지는 내가 시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그 무렵에 시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때였다.

이제 만두를 포장하는 것은 뒷전이고, 시를 지었다는 사람한테 조금 전에 읊었던 시를 한번 더 읊어보라고 권했더니 이번에는 시에 해설까지 곁들여서 들려주었다.

만두를 사러온 손님한테 얼른 가자고 재촉했을 때는 장사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얼른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이젠 거꾸로 만두를 산 손님이 얼른 가자고 재촉을 했다.

“어허, 이 분 얘기가 아직 안 끝났응께 가만히 좀 있어보란 말이요!”

이젠 시를 쓴다는 사람이 들려주는 얘기가 더 궁금해진 내가 만두를 산 손님이 재촉하는 말의 허리를 자르고 나무라듯 말하자, 휘청거리던 걸음의 남자가 술이 확 깬 듯 우뚝 서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앞치마를 두른, 웬 촌닭 같은 만두집 아짐씨가 뭣을 안다고 자신이 읊은 시에 호기심을 보이며 정작 만두를 산 손님한테 대뜸 뭐라고 큰소리를 치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것도 초면인데다 나잇살 꽤나 드신 아저씨한테 말이다.

시를 읊던 중년 남자가 원래는 성악을 전공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했고, 지금은 사진이 본업이긴 하지만 시를 좋아하는지라 문학 관련 모임을 갖고 싶다며 우리 만두집에서 모임을 가져도 괜찮겠냐고 내게 물었다.

나도 글에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전혀 없었던 터라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조차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가게에서 모임을 가지면 그들이 문학에 관해 논하는 얘기를 귀동냥으로나마 들을 수도 있을 테고, 하다못해 만두 한 판이라도 더 팔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무조건 대환영이라고 대답했다.

처음 본 사람이며, 얼굴도 떠오르지 않은 중년 아저씨였고, 읊은 시가 마음에 와 닿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 나이에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여운이 남아서 어떤 모임을 가지려는지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술기운에 했던 말이었던지 그 후 한 달이 지났어도 꿩 구워 먹은 듯 소식이 깡통이었고, 나 역시 별 싱거운 사람 다 봤다고 치부해버렸다.

손님도 없고 한가한 시간에는 종종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를 쓰거나 사이버 유람을 즐기는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에 올라온 시를 읽고 있을 때 만두를 사러온 한 손님이 컴퓨터 모니터에 멈춰진 화면을 보다가 내게 시를 좋아하느냐고 물어왔다.

이제까지는 시와 담을 쌓고 살아왔었는데 작년부터 시가 좋아졌고, 지금은 그저 다른 사람들이 쓴 시를 감상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과 지난달에 시를 쓰시는 어떤 분이 가게에 왔었단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 손님이 어떤 인상착의를 얘기하면서 이러이러한 분이 아니냐며 그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은 약속 때문에 바쁘니 시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며 만두를 사가지고 갔는데, 그 손님 역시 시를 가까이하는 사람인 듯했다. 그래서 그 손님으로 인해 문득 지난번에 시를 읊던 사람이 떠올라 블로그에 위의 내용을 끼적거리다 보니 어느덧 밤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정리를 하고 집에 들어가려고 막 블로그를 나가려던 참인데, 만두집 비닐 휘장 안으로 고개를 디밀며 말씀 좀 묻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여기가 시를 쓰는 사람들의 모임장소인가요?”

워낙 얼굴에 대한 기억력이 없어서 그렇게 물어오는 사람 역시 생소한 얼굴이었지만 시를 들먹이는 것으로 보아 그때 그 손님인 듯했다.

내내 잊고 있다가 그날의 느낌을 적고 있을 때에 그 손님이 다시 온 것이라 무척 신기한 일이라 여겨졌다. 한 번쯤 다시 오기를 내심 기다리던 마음이 전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찾아온 것이다.

그날은 술이 좀 과했을 때 들른 거였기에 그 후로 여기를 몇 번 지나쳤으면서도 모임장소가 맞는지 몰라 묻기를 망설였는데 이제야 어렴풋이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런데 ‘시를 쓰는 사람들의 모임의 장소’냐고 물어온 것은 잘못 이해된 부분이었다.

나는 그 손님이 시를 쓰는 사람들의 모임을 우리 가게에서 가져도 되냐고 묻는 것으로 들은 것이었는데, 그 손님은 시를 쓰는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아지트처럼 이용하고 있는 줄 알고 여기에 오면 문학을 하시는 분들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걸로 기대했었던 듯, 자기도 동참할 수 있냐고 물었던 것이었다.

아까 인상착의를 얘기했던 사람이 자기가 만두집에 갔더니 시를 읊었던 사람을 들먹이더라고 그새 연락을 취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번에도 술이 좀 얼큰해져서야 기억이 되살아났을까?

어떤 사람이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후 기막힌 문구가 떠올라 얼른 종이에 썼는데 다음날 술이 깨고 나서 읽어봤을 때, 휘갈겨 쓴 문구가 도무지 무슨 말을 썼는지 전혀 해독이 안 되어 끙끙거리다 다시 술을 마신 후에야 자신이 쓴 ‘다시는 술을 마시자 말자!’라는 문구가 보이더란 우스갯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유자차 한 잔을 대접해 드리고 그날 읊었던 누이에 관한 시와, 시에 등장한 누이에 대한 기억 그리고 시와 문학에 관한 견해를 들었다.

아무리 문학이라는 같은 병에 걸린 동료의식이 생겨 공통의 화제가 있다 해도 찻잔을 사이에 두고 앉아 낯선 사람과 많은 얘기를 나누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며 양해를 구하고, 나 역시 문학에 관련된 모임에 참석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아쉽다는 것과 온라인상에도 많은 문학 카페가 있으니 한번 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얘기를 해줬다. 그리고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읽고 공감하는 부분에 댓글을 남기거나, 자신이 쓴 글을 올리기도 하면서 문학적 교류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오프라인 모임까지 이어질 수 있고, 온라인에서의 다양한 부류의 글과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통해 많은 공부가 될 거라고 권해 드렸다.

그 손님뿐만 아니라 우리 가게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료해하는 나이 드신 몇몇 분들께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인터넷을 배워보길 권하곤 한다.

사이버 공간이라는 가상의 세계지만 글을 통해 서로를 격려해주거나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따뜻한 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잘 쓰나 못 쓰나 끼적거리는 것을 좋아하므로 ‘내가 십 년만 더 젊었어도…….’라는, 다시 돌아가 볼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미련을 갖거나 후회를 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십년 후 아니 검은 머리가 파뿌리로 되어도 나는 뭔가를 끼적거리고 있을 거라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를 떠올리다 보면 자녀들이 하나 둘 내 품을 떠나 제 갈 길을 가고,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지더라도 나이 듦이 조금은 덜 두려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