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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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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날


BY 종소리 2008-07-17

아침부터 비가 내려 조금 걱정이 되었다.

오죽잖은 차마져도 운전할 수 없게된 남자와 그냥 지하철로 공항에 가려고 했는데

어제저녁부터 삐었다는 발목을 아침에도 여러번 보여주며 엄살을 하길래

그럼 오지마 나 혼자 갔다올께...

했던니 그래도 괜찮겠어? 한다.

 

정말 발목이 좀 붓고 멍도 들기는 했지만 좀 엄살을 부리는 것 같아

짜증이 나서 한말인데 냉큼 받는다

알 수 없는 남자다.

아직 어린 자식이 먼길을 가는데 그렇게 하고 싶은지 나로서는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차피 지하철로 가서 체크인 해주고 몇시간 같이 기다려 주는 것이라

실제적으로 아빠가 할 일은 별로 없지만 아빠만이 줄 수 있는 마음이 있을텐데...

 

아침 출근전쟁의 지하철,

광화문에서 5호선으로 김포공항에서 다시 영종도로 가는 공항철도로

비가 뿌리는 철도 창밖으로 잿빛하늘 아래 잿빛 갯벌이 펼쳐졌다.

우울한  색깔과 달리 갯벌은 끝없는 숨구멍을 만들어 놓고 생명력을 과시했다.

아주 작은 소라, 갯지렁이, 능재이(작은 게)

인간이 보기에 보잘것 없는 것 같은 작은 생명들은 큰 울림처럼 바다의 주인임을 과시하며

갯벌에 부드러운 융단같은 숨구멍을 깔아놓고 있었다.

 

2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한 공항청사는

별로 비행기 탈 일이 없는 내게는 3년전 선아가 영국을 방문했을때 와보고는 처음이다.

재민이는 좀 말끔한 공항철도와 에스컬레이터같은 이동보드를 보며

천진하게 감탄하고 있었지만 내심 아빠가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했는지

아빠 진짜 발목이 아픈게 맞냐고 묻는다.

 

이렇게 멀리,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으로, 어찌보면 모험같은 여행을가는

저를 배웅도 안하는 아빠가 서운한 모양이다.

안그래도 미운 남자를 두둔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혹시 아이가 받을 상처때문에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재민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위로하라고 전했다.

 

태연자약해하는 녀석의 안을 들여다보면

솜털보다 더 약한마음 유리같은 감성들이 꽉 차 있음을 나는 안다.

생각하면 괜히 콧등이 시큰거리는 내 아이..

나는 장난처럼 탑승출구를 빠져나간 아이를 유리사이로 들여다보며 손짓을했다.

녀석은 어른이나 된 듯 돌아가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지만 얼마나 긴장되고 설레였을까...

 

배웅하고 돌아오는 공항철도는 말끔한 외관과는 다른게 카펫이 깔린 바닥과 의자에까지

배어있는 습기로 인해 퀴퀴한 냄새가 진동해 나는 몇번 재채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진정했다.

아까보다 더 많은 비가 갯벌위로 쏟아졌지만

갯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남자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를 배웅하지않은 것이 좀 미안한지... 비가와서 걱정이라고

 

그에게는 무엇이 중요할까?

나는 별로 슬플것도 기쁠것도 없는 기분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졸다말다를 반복했다.

 

.

.

.

새벽2시

재민이가 런던공항에 막 도착했을 것이다.

조금있으면 보딩브리지를 지날테고...

10분후 전화를 해봐야겠다.

처음 나가는 외국길이 얼마나 긴장될까

남자는 아직도 들어오지않았다.

삐인 발목때문에 아들배웅도 못한다더니 어디서 또 술마실 기운은 있는 모양이다.

나는 간혹 나에게 일어나는 별 대수롭지 않은 시시한 사건들을 타자가되어 들여다 본다.

 

참으로 시시껄렁하다.

TV에서보면 참 험하고 무서운 이야기들이 많다.

어제 방영했던 긴급출동 S.O.S 라는 프로그램은  60세가 넘은 노인이 아내에게 휘드르던  폭력과

의처증은 너무 무섭고도 자극적이다.

세상은 이런 잡다하면서도 무서운 자극들과 우리같은 무지랭이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거대 구조나 따라잡기 힘든 경제와 법률들로 얽혀있다.

이건희회장이 아들에게 편법으로 재산을 승계했다고 떠들더니

오늘은 별문제 없다는 해석과 함께 집행유해란다.

그렇다니 그런것이지 설명해줘도 따라잡기도 어렵다.

그런것에 비하면 내게 일어나는 일들은 읽히지도 않는 무명잡지의 재미없는 이야기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시큰둥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어느순간에 눈물이 나는 것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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