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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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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손톱7(마지막회)


BY 달맞이꽃 2007-11-22

“그 아이를 낳으면 전 평생 힘들게 살면서 날 버린 그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겠지요. 하지만 그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전 평생 제 스스로를  미워하며 살아야 할 거예요. 자기를  미워하면서 사는 건 다른 누군가를   미워하며 사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잖아요.”

윤영은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허망함을 느꼈다. 이야기를 들으며 시범삼아 아이엄마의 손톱을 그려주던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윤영의 손과 마주 닿아 있는 그녀의 손은 참 따스했다. 갑자기 그녀의 손에서 심장박동이 전해져 오는 듯 했다. 윤영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잊어버렸다 생각했다. 아팠던 기억들은 점차 희미해져 갔고 죽을 것 같았던 순간들도 이미 지나쳐 간 과거의 일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지독하게 버림받고도, 또는 어떤 죄 없는 한 생명을 죽이고도, 모든 것을 희미하게 지워가면서 이리 잘 살 수 있는 거구나 윤영은 내심 놀라웠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그리 살 수 있는 거구나, 그리 보면 참 아픔이란 것도 별 게 아니구나, 윤영은 그리 생각했었다.

그렇게 기억들을 지워내면서 자신의 삶도 지워내고 있는 줄은 그녀는 몰랐다. 세훈에 대한 기억과 아기에 대한 기억들을 지워내면서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쌓아가고 있는 줄은 참으로 몰랐다. 윤영의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그리 후회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다시 같은 상황이 와도 자신은 결코 아기를 지켜내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손가락질과 싸울 자신도 없고, 아이를 볼 때마다 생각날 버림받은 여자라는 각인도 견뎌 낼 자신이 없었다. 그저 사람을 사랑한 것뿐인데 사랑한 죄가 이다지도 큰 것은 어찌함인지.......서로 사랑하라한 신의 말씀을 지켰으나 간음치 말라한 말씀은 어겼기 때문에 오는 고통이던가. 아기 예수를 탄생한 마리아도 미혼모였다. 단지 그녀는 축복받은 미혼모였고, 신의 거룩한 씨앗을 받은 미혼모였으나, 윤영은 거룩하지 않은 자의 씨앗을 받은 미혼모였다. 마리아는 남편에게 버림받지 않았으나 윤영은 애인에게 버림을 받았다. 마리아의 아기는 비록 말구유에서 태어났으나 세상을 구원할 자의 나심이라 하여 동방박사들에게 경배를 받았지만 윤영의 아기는 세상의 빛이란 것이 얼마나 밝은지, 따뜻하기는 한 것인지 한번 확인조차도 해 보지 못한 채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야 했다.

윤영은 그날 밤, 다시 꿈을 꾸었다. 그녀는 여전히 손톱을 자르고 있었다. 하나하나 잘려진 손톱들은 다시 자라지 않았다. 대신 손톱을 하나 자를 때마다 윤영의 모습이 점점 변하여 갔다. 발목은 가늘어지고 꼬리가 생겨났으며 머리카락도 없어지더니 윤영은 점점 커다란 쥐의 형상으로 변하여 갔다. 어디선가 또 다른 쥐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쥐는 방금 윤영이 잘라 놓은 손톱을 열심히 주워 먹는다. 그리고는 쥐로 변한 윤영이 서글프게 지켜보는 가운데 서서히 윤영의 모습으로 변하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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