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쥐가 손톱을 주워 먹는 꿈을 꾼 이후로 윤영은 다시는 그러한 꿈을 꾸지 않았다. 다만 끊임없이 현실 속에서 귓전을 때리는 가느다란 목소리에 쫓겨 다닐 뿐이었다. 그것은 꿈을 꾸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선명하게 윤영의 뇌리에 꽂혀왔다.
‘그 아이는 너의 분신이야. 그런데 죽인다고?’
‘아니야. 그 아이는 죽일 만큼 싫어하는 그 자식의 아이야.’
‘너도 봤잖아? 손톱을 주워 먹은 쥐가 네 모습으로 변해가는 걸.’
‘그건 그냥 꿈일 뿐이야!’
‘네 뱃속에 든 아이는 꿈이 아니지.’
그렇게 윤영을 괴롭히던 소리는 그녀가 병원에서 아이를 지우고 난 이후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낙태 수술은 참으로 간단했다.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힘없는 한 생명의 사라짐은 그토록 허무하고, 또 그래서 슬펐다. 하지만 슬픔이란 감정에 마냥 빠져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윤영은 그저 그 앙금이 남아있는 기간이 그 수술시간만큼이나 짧았으면 하고 바랬다.
사람이 어떠한 기억을 잊어버리는 데에는 일을 하는 것이 최고다. 아이를 지우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만큼이나 몸에 무리가 오는 일이기에 몸조리를 잘 해야 한다고 병원에서 신신당부를 했지만 윤영은 서둘러 다시 샾을 열었다.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몸보다 더 힘든 것은 마음이었다.
손님들을 만나는 일은 즐거웠다. 아름다워지기 원하는 마음은 여성들의 본능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손톱 하나까지도 예뻐 보이고 싶어 하는 그녀들의 마음을 대할 때면 윤영은 왠지 그녀들을 보듬어 안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손톱에 칩을 붙여 짤막한 손톱의 길이를 길게 만들었을 때보다, 갖가지 아름다운 색으로 우아한 아트들을 손톱 위에 수놓았을 때보다, 샾을 찾아와 언니, 언니 친근하게 매달리며 예쁘게 해 달라고 홍조 띤 얼굴로 수줍게 말하는 그녀들의 얼굴이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 수줍은 얼굴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움이었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네, 구구절절 떠들어대는 그녀들의 수다도 즐거움이었다. 그녀들의 이야기 속엔 사랑의 아픔 같은 것은 없었다. 아픔에 빠져 헤매는 사람은 자신을 가꿀 여유가 없는 법이다. 그녀들은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데이트를 위해서 손톱을 가꾸거나 아니면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전문적으로 윤영에게 네일아트를 배우러 오거나 하는 것이었다. 윤영은 그녀들의 에너지를 함께 나누어 갖는 것에서 위로를 얻고 있었다. 그녀들의 삶이 제 삶이겠거니 그렇게 최면을 걸듯이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언제나 시간은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의 강은 고맙게도 윤영의 기억도 조각조각 알게 모르게 싣고 갔다. 손님들의 손톱을 보아도 세훈이 떠오르지 않을 즈음, 윤영의 샾에 여자 손님이 한명 찾아왔다. 한 눈에 보기에도 스무 살 중반이 채 되지 않았을 듯한 젊은 아가씨였다. 그녀는 윤영에게 네일아트를 배우기를 원했다.
“대학생이면 수강시간은 저녁때가 좋겠지요?”
여리게 미소를 띠던 그 여자 손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대학생 아니에요. 네 살짜리 딸도 하나 있는 걸요?”
“네? 지금 몇 살이신데요?”
“스물넷이요.”
그녀와의 만남은 윤영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대학 1학년 때 학교를 자퇴한 그녀는 미혼모였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해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처음 하게 된 연애에서 선을 지키지 못해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상대 남자는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 학교를 휴학하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버렸고 윤영이 그러했듯 그녀 역시도 아기를 지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다.
윤영은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상대 남자도 버리고 간 아기를 그녀 혼자서 떠맡아야 한단 말인가. 그 아기는 그녀 혼자의 아기가 아니지 않는가. 두 사람의 아기를 책임져야 하는 쪽이 그저 뱃속에 들어있다는 이유로 항상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윤영은 화가 나고 분했다.
“힘들지 않아요?”
윤영은 어렵게 물었다. 그녀는 현재 이러저러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생활비를 마련하는 모양이었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작은 기술이라도 하나 배워야겠다 싶어 네일아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 힘들지 않겠어요? 사실 너무 힘들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날 버리고 사라진 그 사람이 원망스러워요. 뭐, 아주 가끔은 그립기도 하지만.......”
“그렇게 힘들 걸 어떻게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어요?”
그녀는 잠시 슬프게 웃는 듯 했다. 그리고는 지그시 윤영을 바라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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