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지 생신축하를 하기 위해 경북 봉화로 갔다.
동생네 부부차에 동승해 가기로 했으므로 가게도 하루 쉬었다.
고향에 가까워지자 눈 앞에 펼쳐지는 그림같은 풍광에 감탄을 거듭하였다.
한식을 맞아 성묘가는 차들로 많이 붐비리라 예상 했건만 네시간 정도 걸려 친정집에 도착했다.
친정집 어귀에 들어서자 담장까지 전통기와를 얹은 동네가 눈에 들어온다.
그 중 한집이 부모님이 사시는 곳이다.
가는 도중에 점심식사를 하고 들어갈까 했지만 친정엄마께서 준비하신 밥을 먹기로 했다.
예상대로 엄마는 정성이 듬뿍 깃든 밥상을 차려 주셨다.
안동한우와 버섯을 꿴 꼬치구이, 황태구이, 가오리찜, 잡채, 직접 쑨 도토리묵, 파전, 도라지김치, 된장에 넣어 뒀던 풋고추장아찌, 나물, 안동간고등어구이, 미역국
힘들게 그런 밥상 마련하시지 마시라 해도 늘 그러신다.
그것도 많이 장만하셔서 갈 때 싸가지고 가라고도 하신다.
아버지께는 생신축하금을 드리고 엄마께는 퀼트가방을 드리니 너무 좋아하신다.
그런 류의 가방이 탐나 사려고 물었더니 너무 비싸 망설였던 가방이라신다.
아버지께서는 재료비조로 금일봉을 주셨다.
점심식사 후 뒷동산에서 쑥과 냉이, 씀바귀를 캤다.
얼마나 재미가 있었던지 저녁식사 후 산책을 가려다 또 나물을 발견하고 어스름한 시각에도 더듬더듬 그 작업을 계속했다.
밤이 깊도록 세모녀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늘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지만 서로의 기억력을 되새김질이라도 하듯 그렇게 시간을 소비했다.
시골의 아침은 도시의 아침보다 이르게 시작되었다.
안 떠지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식사를 하고 엄마께서 얼마 전에 등록하셨다는 교회에 갔다.
시골교회치고는 제법 규모가 컸다.
성찬식 때 시무장로님 열분이 그 행사를 도우셨다.
오랫만에 성찬식에 동참하면서 나와 인연 맺은 모든이들에게 매듭을 짓지 말고 고운 모습으로 대해야겠다고 다짐 했다.
전교인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교회였지만 우리 일행은 안동손칼국시를 먹기로 했다.
자랄 때 커다란 홍두깨로 밑의 글씨가 비칠 정도로 얇게 밀어 끓여 먹던 추억의 음식이다.
이제는 친정엄마의 힘에 부치는 국시라 고향에 갈 때마다 되도록 들러 먹는 집이다.
아주 담백한 콩국시 맛이 여전 했다.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만들어 주신 거란다.
단골손님이라고 갓 담은 열무김치도 덤으로 내 놓으신다.
점심식사 후 본격적으로 나물캐기 작업에 돌입 했다.
난 주로 냉이와 쑥을 모으고 동생은 고들빼기를 모았다.
유물관이 있는 대종가에 들러 인사를 드리고
친정엄마께서 싸주시는 먹을거리들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풍기에 있는 유명한 서부냉면집에 들러 냉면을 먹었다.
서울에서 먹는 질기고 진한 맛의 냉면과는 차이가 많은 아주 담담한 냉면이다.
찰기도 없어서 그냥 툭툭 끊어지고 맛도 메밀 그 자체의 맛을 음미하는 그런 냉면이다.
육수 대신 주는 물도 메밀냉면국수 삶은 물이라 아무 맛도 없이 그냥 덤덤할 뿐이다.
그래도 오리지널 평양냉면에 가장 흡사한 맛이라 매니어들이 많이 찾는 집이란다.
길이 제법 막혀 다섯시간이 넘도록 차에 갇혀 있었지만
추억의 구닥다리 팝송 씨디가 네장이나 있어 오는 내내 귀와 입이 즐거웠다.
가게문까지 닫고 놀토가 아니라 아이들까지 떼어 놓고 다녀온 고향나들이었지만
숨막힐 듯 힘겹게 돌아가는 삭막한 삶에 생기를 불어 넣은 듯 상쾌하다.
고향이란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가 번지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