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 십년을 병원에서 누워 지내는 한 환자를 알고 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그 환자의 인적사항이나 개인적인 일은 밝힐 수는 없지만
전에 근무했었던 병원에서 만나 내 기억에 유독 오롯하게 남은 환자였다.
나이도 나와 동갑내기고 아이들도 나의 아이들과 나이가 엇 비슷하다.
그 땐 내가 나이트로 근무했었는데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병사니 간호사들이 이 환자에겐 유별난 감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불만이 많은 상태였다.
오랜 투병생활에 이력이 날 법한 환자 입장이나,
케어자로서의 입장 차이가 극과 극으로 치달을 무렵 내가 그 병동에 투입이 된 때,
오더가 나와도 누구하나 그 환자 근처를 가는 것을 꺼렸다.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나 싶었고, 나 또한 케어자인 입장이고 보니
다른 동료들과의 연대 아닌 연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진짜 친해도 친한 척이라도 하지 말아야 하고 모른척 해야 하는
법 아닌 법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병동이다.
특히 환자와 케어자의 관계가 그런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드러내놓고 나 또한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그 환자는 일단 경계 대상 1호 였다.
그러다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 듯 내가 드레싱을 할 차례가 되었다.
그 때 이 환자가 나에게 하는 말
" 선생님 제가 지금 제일 부러워 하는 것이 뭔지 한 번만 물어 봐주셔요?" 한다.
그래서 똑같이 원하는대로 질문을 그대로 했는데 대답이
" 건강한 사람처럼 걸어 다니는 것도 아니고요
맛있는 거 마음대로 사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어제 이 병실에서 누구처럼 장례식장에 실려 나가는 게 젤 부러워요..."
죽어 나가는 것이 제일 부러웠다는 환자의 말에 순간 내 머릿속에 쿵하고 뭔가 내리치는 느낌이 들었다.
살인 사건이 뉴스에 하도 많이 나서 충격 받을 일이 더 없을 것 같았지만,
정작 내 앞에서 제일 부러운 일이 장례식장에 가는 주검들이었다는
그녀의 대답에 한 참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 후로 나는 남의 시선 모르게 커피나 음료수등을 몰래 몰래 나르기 시작했다.
누구도 모르게 해야 한다는 그 사명 같지 않은 임무를 맡은 것처럼.
그리고 나도 부탁을 했다.
그 어떠한 불만이나 일이 생기면 나에게 애길 하라고,
대신 나랑 친하다고 하면 시기나 질투가 반드시 덤비니까
우린 일종의 모략을 꾸미듯이 그렇게 그 병동에 육개월동안 조용히 지냈다.
그 후로 그 환자에게서 간호과에 불만이 들어 오지 않았다.
대신 나를 살짝 찾아 보고하듯 애길 하면 그 뿐이었다.
다 요구한다고 해서 해결될리 없는 그 사소한 불만들이
모두 내 선에서 접수되고 처리되니 조용하게 지냈다.
그 후 로테이션 되는 다음 인수 받을 간호사에게 따로 당부하듯 부탁했었다.
" 그 환자는 애기를 잘 들어만 주셔도 기분이 좋아지셔요 " 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 생길 때마다 문득문득 이 환자가 생각이 난다.
살아있는 것을 부러워 하는 것은 고사하고 장례식장에 가는 주검을 부러워 했다는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도 그 날이 언젠가 오겠지만 당장은 아니지만 좀 먼 애기라고 생각 할 때,
사람이 갈 때를 알고 있슴 누군들 부러워 할까?
누구에게나 곤경이 가끔 끼어들고 내리막에 곤두박질치듯 후덜덜해도
잠시 잠깐일 뿐
모든 것이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 분에게
요즘 잘 지내시는지 전화문자를 드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