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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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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모자르고 굼떠도


BY 천정자 2014-11-30



격세지감이라고 12월되면 꼭 이 말이 사용된다.

뭐하다가 나이만 자꾸 느는지 누구한테 물을 수도 없고.

 

옛날 애기가 문득 떠오른다.

딸내미 막 돌이 지나 시집에서 좆겨나 남의 집 문간방 삭월세 살았을 때,

너무 방세가 싼 이유가 그 날 밤에 알았다.

 

창문너머 온동네 하수구가 모여 물이 고이는 저수지 아닌 하수구 종착역이고 보니

황소개구리 왁왁 걱걱 울지, 모기 웽웽대지  요즘도 아홉시 되면 졸리기 시작하는데, 이건 아주 날 밤을 같이 개구리들의 합창으로 잘 수가 없었다.

당장 내일 아침 쌀이나 마나 딸내미 분유도 없고,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아 아예 싹 잊고 당장 필요한 거 뭐? 이런 식으로 살았다.

참 습관이 무섭긴 무섭다. 그 때 그 후로 그렇게 살아선가 지금도 당장 떨어지지 않으면,

급하지 않으면, 나중에 좀 천천히 구해도 괜찮은 것은 그냥 버티면 어떻게 남들이 내 사정을 잘 아나 혹시 이런 거 필요하지 않냐고 갖다 주고, 자기 네집은 안 쓴다고 장판이 두개인데 하나 주고, 애들이 금방 커서 옷이 작아졌다고 청바지, 잠바,운동화 아주 쎄트로 그것도 나는 메이커 이름 잘 몰라 못 사입는 고급옷들이 줄줄히 사시사철 들어 왔었다. 애들 제대로 가르친다고 학원은 꿈도 안꾸었는데, 사실 방목교육을 시킨 셈이다. 자식과 에미가 같이 사는 것에 골몰해서 어디 잘 가르치는 것까지 신경 쓴다는 것이 나에게 사치와 다름이 없는데, 나중에 보니 애들이 그 걸 우리 안 버리고 그래도 단칸방이라도 끼고 다녀 키워줬다는 것에 고마워 하는 것을 보니, 나도 애들한테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웠다. 

 

그런 세월이 분명히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여기에다 남의 집 속앓이 애기하듯 술술 털어놓는 걸보니 이젠 어지간히 살만 큼 살아 웬만한 일은 눈하나 깜짝 안하는 배포가 두둑한 늙은 아줌마가 다 되버린 것이다.

 

참 그 땐 어떻게 살았는지 ..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고 그런 것보다 시집에서 무시 받은 것이 더 억울한 때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젠 역전이 되버렸다. 달리 새옹지마, 피장파장, 역지사지 뭐 이런 말을 다 써도 그 심정을 다 표현 하지 못한다.

 

당장 손해보고 억울하고 기가 막힌 그 때 그 시절.

문제 해결 하겠다고 설레발 큰 소리 난리쳤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다는 것을 조금 어슴푸레 인정하는 것이다. 욱하는 성질에 남편하고 싸우다가 경찰서에 실려 간 적도 몇 번 있고보니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시켜도 세상 만사 다 귀찮은 일을 왜 만드나 싶다.

 

요즘 나는 남편보고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이 착해서 나같이 느리고 일도 잘 못하는 사람을 만난 거여.

오래 같이 살다보면 그게 전염되는 것처럼 닮아져.

부부가 오래  가족으로 같이 살다가 진짜 오래 오래 살면 전우가 된다며.

 

그 어려운 시절을 같이 겪은 전우애가 돈독해진다는 말이겠다.

좀 없어도 좀 모지라도 그것이 내 몫인데 인정하고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