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태풍에 몇 십년 살았던 살구나무가 부러지고 쓰러졌다.
대문옆에 기대어 살던 나무였다.
떡살구라 해마다 맛있게 익어 오며 가며 익을 걸 골라 따먹었는데,
나무에게도 인생처럼 수명을 달리하는 구나 했다.
집안에 앉아서 강력하게 부는 바람을 쳐다보니
보이지 않아도 이 어마어마한 천하장사와 같이 힘을 내서
저 나무를 부러뜨린다는 것에 경외감을 새롭게 가졌다.
오래 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가 보다.
뭐하다가 그렇게 오래 살았니 누가 물어봐도 당장 대답이 궁하다.
어제같이 하늘이 화가 나서 온 세상사람을 정신을 홀딱 빠지게 할 정도의 위력은
자연이 아님 절대 그 누구도 휘두를 수 없다.
그 경외감이 나의 존재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오늘만 살아도 감지덕지다.
살아가는 과정에 어떤 성분이 가장 필요할까.
공기중에 그 어떤 성분도 함량이 부족하면 공기가 되지 못한다.
나름의 작은 분량으로 존재를 증영하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한 적이 참 많다. 안 보여서 못 봐서 믿지 못한다는 세상인데.
나에게 지금 주어진 시간이 과연 누구에게서 전달이 되엇을까.
나는 또 누구에게 내 시간을 전달하고 사용 할 것인지 진짜 심각하게 고려를 하게 되었다.
요즘은 재능기부나 자원봉사등 많은 시스템을 갖춰 보이지 않게 시간전달을 하시는 분들이 우리가 세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아마 이런 분들 때문에 아직 세상은 살 만한 곳으로 변화 시킨다고 생각한다.
집이든 직장이든 어디든 내가 살아 있는 곳에 가장 적당한 나눔이 존재하게 한 주체적인 삶의 행위를 아주 자연스럽게 하고 있으면서도, 대의명분을 만들어 하는 것 보다 지극히 작고 사소한 것을 꾸준히 하는 것이 얼마나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깨달았다.
이왕지사 어차피 한 번 온 세상이니
내가 살아 살다가 떠날 때까지 무엇을 하고 갈 것인지 온전히 내 몫이라는 것도 배웠다. 누가 어떻든 비교는 절대 할 일이 아니다. 특히 나와는 전혀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과 혼자 줄자 대듯이 길다 짧다 아무리 잰들 달라질 상황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 혼자 웃었다. 그동안 나는 무슨 착각을 하고 살아었나..
나 외엔 절대 나만이 사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한마디로 오산이었다.
그렇게 뜨겁고 더운 여름을 이렇게 강력한 태풍으로 날려보낼 줄은 누가 짐작도 못했을텐데,
그나저나 내년부턴 살구를 사먹어야 되나.
그동안 고마운 줄 모르고 철되면 당연히 꽃피고 열매맺어 늘 노랗게 말랑말랑하던 그 새콤한 맛을 돈주고 사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러진 살구나무를 다시 쳐다본다.
오늘은 사람사는 것이나 나무나 사는 것이 별 다를 게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