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시골 오지에 살아도 세상소식은 안방에서 나온다.
요즘은 우리집에서 두번째로 고뮬이 되어가는 TV가 신문이 되기도 한다.
아직 집엔 피씨가 없는 관계로 늘 조용하다.
간혹가다가 두 마리 개가 지나가는 객인지, 아님 지나가는 차에 컹컹 짖어대는 소리에
나도 창호문을 열어본다.
그렇게 올 여름엔 비가 많이 오더니
고춧가루 한 근에 이 만원이라고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단다.
그럼에도 내심으로 그거라도 어디여, 아예 생산이 안되면 어쩔건데.
근처 시골장에 지나다가 올망졸망 같은 모양이 아닌 울퉁불퉁한 호박도 반갑다.
그만큼 일조량이 부족해 녹색채소가 때갈좋게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많이 뜨겁게 달궈져야
완전한 과일이 되고 먹거리가 된다. 비싸게 나와도 고맙다. 없으면 어떡하나...
푸른감이 드디어 익어간다.
너른들에 누우런 색이 막 입히기 전에 연한 연두색이 부풀어 아른 아른 흔들린다.
가을이 갑자기 오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서늘한 바람과 뜨거운 태양을 업고 연한 식물에 식혀가며
익어가는 과정을 오롯이 숨김없이 공개한다.
본 다는 것은 반드시 눈으로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직 오지않은 계절을 짐작하듯이 멀리 떨어져 살아도 서로를 알아보는 것은 시선만이 아닐 수 있다.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이 누구든 나만 어렵고 살기 힘들다고 투덜대도, 누군가의 기도나 누군가의 관심 덕분에 오늘을 살아 나가는 밑천이다.
한가롭게 살 수 있는 것도 복이다.
작은 복을 알아보고 가치를 매기고 느낄 줄 알면 큰 복은 저절로 작은 것을 아는 자에게 접근한다.
아는 만큼 대접과 있는 만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만족의 기준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줄 쳐서 여기까지의 만족은 남의 기준이고,
적어도 나만의 사는 방법과 나름 만족 기준을 찾아내야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남들의 시선은 겉만 주르룩 흩을 뿐이다.
그 속을 드려다 볼려면 시선만 갖고는 부족하다.
굳이 남의 속까지 확인 해가면서 산다는 것도 큰 스트레스다.
이 만큼 살면 됐지 이 정도면 됐지 누구에겐 부담없는 기준이 된다는것도 가장 행복한 선물이 될 것이다.
오늘의 수다는 이상하게 설교가 되버렸다.
나도 별로 떠들고 싶지 않은 수다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