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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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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족.


BY 천정자 2006-05-10

핸드백을 소파에 올려 놓아도 자리가 남는 데

그 여자는 가슴에 책가방을 안듯이 그러고 앉아 있었다.

 

보험영업을 하다보니 정신과 의사가  나의 고객이 되어

찾아 갔더니 환자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 여자는 불안한 얼굴로

내내 창문만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잠시 뵙고 갈 영업사원인데.

그 여자는 나를 자기와 같은 처지인 환자처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다른 환자도 많지 않았다.

내과진료처럼 엑스레이 한 방이면 어디가 어떻고 진단이 간단하지만

정신과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몇 번의 상담에 한시간씩 소요되는 상담에 복잡하게 보였다.

난 지루했다. 성질상 전화 한통이면 될 것들인데, 굳이 안면 익히고 오가는 거래가

꼭 있어야 할 보험영업이다.

 

그런데 그 여자가 커피를 한 잔 자판기에서 빼준다.

얼떨결에 받으니 고맙습니다 했다.

빙긋이 웃으면서 유어 웰컴 한다.

 

난 영어를 대답하는 한국여자를 보니 나도 이상해진 것 같았다.

그 이후로 그여자는 시종일관 반은 영어로 반은 한국말이 뒹굴러가는 코맹맹이 소리를 듣고 대충 대충 고개를 아래위로 대답했다.  

 

자기는 미국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되어서 한국어가 서툴다고 한다.

말이 빨라지면 영어로 잽싸게 씨엔엔 수준의 단어들이 튀어 나온다.

난 못알아 듣는 게 당연지사고, 그래도 어쩌랴... 들어주는 데는 도사다.

 

간호사가 누구 이름을 부르는데 한국이름이 아니다.

넬리스 김이라고 했던가... 그러니 얼른 그여자가 일어난다.

그러더니 간호사에게 안고 있던 핸드백을 주면서 그런다. 잘 지켜달라고.

 

간호사는 핸드백을 들고 웃으면서 진료실문을 열어준다.

점심시간이 가까이 오는데도 좀체 그 여자는 진료실에서 나 올 기미가 없다.

그런데 간호사가 나를 부른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선생님이 더 기다려야 나올 실 것 같은데.

 

난  할 수없이 서류를 놓고 갈까, 아니면 다시 올까. 이렇게 갈등하던 차에

그 여자가 나왔다. 진료가 끝났나 보다 했더니 그 여자는 핸드백을 달라고 하더니 그 걸 받아들고 또 진료실로 들어간다.

 

이거 무슨 중요한 물건이 있나보구나 했다.

그제야 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명품족이예요.

예?

 

자기 자신을 모두 명품이라고 생각하면서 상류사회에서 산다고 생각하는 여자라고 했다.

정신과에 왜 오는거냐고 물었더니,

한국말이 잘 기억이 안나고, 건망증이 심해져서 심리치료를 한 일년 받고 있는 중이란다.

 

간호사의 대답은 싱드렁하니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집에 가야 하나 보다.

 

돌아가는데 갑자기 내가 지금 집으로 가야하는지.

사무실로 가야 하는지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