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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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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의 몸부림


BY 김정인 2005-06-23

큰 아이가 15개월쯤 되었을 때 집을 뛰쳐 나갔었다.

왠지 집에 있으면 혼자 도태되는 것 같고 지금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나올 수없을 것 같아

썩은 동화줄이건 튼튼한 동화줄이건 안 가리고 막 잡았다.

 

남편은 말한다.

그 때, 멀리 다른 지역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차근차근 직장을 찾아 보았더라면 둘째 낳느라고 사표를 던지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일리있는 말이다.

 

지금 둘째 아이가 15개월이다.

마음이 일렁인다.

지금이 아니면 내가 깡그리 없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강하게 몰아친다.

'30대 후반의 나이, 두 아이의 엄마'라는 대문짝만한 명함만이 떡 하니 나를 짖누른다.

딱 한달 전일이다.

마감 이틀 전에 이력서를 부랴부랴내었다. 전국에서 한 명 뽑는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뭐에 홀린 것 마냥 한 아이는 손을 잡고 한 아이는 들쳐 업고 시댁에 올라갔고  새벽별을 보며 도서관을 향했고 하루 종일 책과 씨름을 했다. 딱 열흘간을.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다 싶은데 그  때는 왜 그리 절실했는지.

 

나에게 남은 건 '이제는 안되는 모양이다'라는 깊은 상실감과 한달 생활비쯤 되는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실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제 나를 받아 줄 곳은 아무 곳도 없나?

막막함이 가슴 중앙을 횅 하니 쓸고 간다.

 

꼬부라져 있는 나에게 남편이 '당신이 그렇게 일하고 싶은 이유가 뭔데?'묻는다.

뭘까?

돈이 없어서.

-없어도 이 때까지 잘 살아왔다. 없으면 안 쓰면 되는 일이고.

아이들을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

-일하는 게 더 편하긴 한데. 엄마가 자신이 없으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키우나

나를 내세울 명분을 찾기 위해

-조금은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맞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일을 하고 있을 때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남에게 봉사하는 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행복하다. 아직 인간이 덜 되어서인지 집안 일을 하고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에겐 29에 만난 애인같은 좋아하는 일이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4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실패로 만신창이 된 마음을 쓸어내리며 다시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지고 있다.

제 2의 재기를 꿈꾸며.

 

7살난 첫째 아이는 엄마의 재기를 열렬히 응원하는 단 한명의 후원자다.

엄마의 치밀한 잔소리의 망을 벗어날 길은 그 길밖에 없음을 알고 있기에.

남편은 반신반의.

맞벌이의 경제적 혜택은 탐이 나지만, 전업주부인 아내가 챙겨주는 이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기도 싫은 눈치.

15개월 된 둘째는 어떤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