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처음 봄소풍이다.
며칠 전부터 부산을 떤다.
"가져 갈 과자를 뭘로 할까? 유희왕? 원피스?"
"음료수는 콜라가 좋을까? 팬돌이가 좋을까?"
"엄마, 선생님이 비닐 봉지 두 개도 챙겨달래. 쓰레기 넣는다고."
부엌일을 하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쫑알쫑알 한도 끝도 없다.
"엄마, 우리가 가는 공원에는 사자가 있대. 용수가 그러더라.
커다란 동굴도 있고 거기 들어가면 되게 무섭대."
"너 저번에 가 봤잖아. 아빠랑 할머니랑."
"(덤벼들듯 따지며) 안 가봤다."
(속으로) 무슨 사자야. 공원에
"엄마, 선생님이 도시락은 김밥이나 볶음밥이나 아무거나 싸 오래.
엄마가 주는대로."
김밥이 싸기 귀찮아 나는 슬쩍 볶음밥 쪽으로 아이를 꼬셔 보기로 했다.
"너 볶음밥은 어때?"
"싫어. 나는 김밥이 맛있어. 엄마가 싸 주는 김밥말고, 사 주는 김밥말이야."
윽. 뭐라고?
아이는 한 번 더 똑똑하게 말했다.
"가게에서 산 김밥말이야."
지 무덤을 지가 판다.
서늘한 기운을 느꼈는지 아이도 나의 눈치를 슬슬 살폈다.
그리고는 더듬더듬거리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아니, 엄마가 싸준 김밥이 더 맛있어."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6살 우리 아들 너무 솔직한 게 탈이다.
그 날 난 이상한 오기가 속에서 불끈 솟아, 기어이 저녁에 아이를 들쳐업고 나가서는 김밥재료를 사 왔다. "엄마가 싸 준 김밥 먹어, 꼭." 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엄마들은 흔히 온갖 심혈을 기울여 새벽부터 일어나 낑낑거리며 싸 아이에게 먹이는 것이 엄마의 도리요 사랑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모처럼 가는 소풍에 자기 입맛에 딱 맞는 김밥을 먹는 것이 행복하겠지.
아니 김밥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와 음료수로만 가득 채워가고 싶은지도.
이렇게 다르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의 마음은.
예전에 상담을 받으러 왔던 한 아줌마가 생각난다.
아들의 생일날이 되어 엄마는 아이들을 초대하고 한상 푸짐하게 차릴 요량으로 친구 몇명정도 올 것 같냐고 물어보았댄다.
그랬더니 아이 왈
"엄마 그거 돈으로 주면 안돼?"
" 뭐하게."
" 응. 생일 축하 파티 해 주는 곳이 있는데, 거기 예약해서 하게."
결국 아이는 친구들이랑 좋아라 생일 파티하고 엄마는 너무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그 아줌마에게 난 진정한 사랑이란 엄마식의 사랑을 마구 퍼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원하는 방법으로 주어야 비로소 사랑을 받았다고 느낀다고 했다.
알고는 있지만, 사랑을 알아주지 않는 자식에 대한 서운한 마음까지도 접어야 하는 엄마의 자리.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