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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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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들려주는 이야기


BY 김정인 2005-01-17

 

                        매미가 들려주는 이야기


 벚순이를 따라 이곳에 이사 온 지도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가네. 옆 동네 물참이는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후회한다’고 나에게 충고를 했지만, 차마 벚순이 혼자 그 먼 곳으로 보낼 수 없어 따라오게 되었어.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렇게까지 행동하는 이유를 알게 될꺼야. 

 벚순이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내가 아주 애기였을 때야. 엄마가 나를 어느 다  쓰러져가는 나뭇가지 위에 낳고는 돌아가셨어. 그 때는 정말 앞이 막막하더라. 엄마의 얼굴조차 못 보고 슬픔에 잠겨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데, 눈앞에 아주 멋진 한그루의 나무가 서 있는 게 아니겠어. 쭉 뻗은 일자형의 큰 키, 하늘을 향해 퍼지는가 싶더니 땅을 향해 떨어지는 가지들. 둥글 넙적하면서도 끝이 뾰족한 손을 바람결에 흔들며 아래에 있는 나를 향해 반갑게 인사 하는 거야. 그 손짓이 애처로운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지. 서 있는 자태뿐만 아니라 색깔은 어떻고. 녹갈색의 단조로운 평상복에서 다소 분백색이 도는 연한 녹색과 진녹색이 어우러져 있는 밑이 확 퍼진 파티복으로 갈아입을 때면 눈이 부시도록 화사하고 싱싱하단다. 따뜻한 봄기운이 올라오는 4-5월쯤에는 온통 분홍 꽃을 피워 파란 하늘을 분홍빛으로 덧칠을 하지. 초여름에 벚순이 팔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검은 버찌 아기들의 재잘재잘 이야기 소리는 매미소리와 어우러져 근사한 오케스트라를 이루지. 정말 내가 꿈에도 그리던 그런 친구였어. 이렇게 벚순이의 뿌리에서 산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는구나. 하루하루가 행복한 날들이었어. 무시무시한 갈고리 손을 가진 괴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 괴물이 한마디 말도 없이 벚순이를 뿌리 채 떠서는 이곳으로 옮겨 놓았어. 벚순이 뿐만이 아니라 예쁘고 멋있는 나무들은 모두 다 옮겨 놓는 통에 숲은 엉망이 되어 버렸지. 이곳저곳이 움푹 패여 눈 뜨고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어. 지금은 모두 어떻게들 살고 있을까?

 뭐, 여기도 그리 유쾌한 상태는 아니야. 벚순이는 적응해 가는 듯 보이지만, 올 때와는 모습이 사뭇 달라졌어. 벚순이는 머리를 길게 늘여 뜨려 바람에 날리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머리를 삭둑 잘려버려서 우울해 하고 있어. 여기 오고 나서는  웃는 모습을 통 볼 수가 없어. 지금쯤이면 예쁜 버찌 아기들이 나올 때인데도 벚순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만 쉬고 있어. 옆에서 보기가 딱할 정도야. 그런 벚순이를 친구로서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인데, 나 또한 혼란스럽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궁리가 서지 않아 이렇게 푸념만 늘어놓고 있는 중이야. 여기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말이야.

 이곳에 와서 나의 가장 달라진 점은 살색의 움직이는 것들에 신경 쓰며 행동하는 거야. 먼저 와 자리를 잡은 감나무의 말로는 그들은 ‘인간’이라고 하는데, 크기에 따라 길쭉한 것은 ‘어른’, 짤막한 것은 ‘아이들’이라고 해. 처음에 태어날 때부터 우리들보다 크게 태어나 자라면서 덩치가 더 커지고 힘도 세어져 우리와는 상대도 안 된다고 하더라. 이곳에서 잘 지내려면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어. 특히, 아이들의 경우는 호기심이 많아 여름이 되면 우리를 잡으려고 큰 주머니를 휘두르며 쫓아다닌다고 해.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내 눈 앞에서 친구가 잡혀 가는 것을 보았어. 얼굴에 때꾸정물이 쪼르르 흐르는 7살 난 개구쟁이 하나가 친구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더니, 마침내는 꼬리에 기다란 줄을 묶어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것이었어.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새파랗게 질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친구를 보면서 아이들의 연신 좋아서 깔깔 거리고 웃는 모습이란 꼭 작은 악마의 얼굴 같아 보였어. 끔찍한 일이야. 그에 반해, 어른들은 아이들처럼 그렇게 무식하게 달려들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신경에 거슬리는 일을 하면 요절을 내어 버린다고 하더라. 3년을 준비해서 겨우 나무 위에 올라왔어. 내 생애의 가장 전성기인 2주 동안 다른 매미들보다 우렁차게 울어 예쁜 짝도 찾고 아기도 만들어야 하고 할 일이 태산인데, 살아남기조차 어려우니 큰일이다.

 요즈음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일은 목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는 일이야. ‘맴맴맴’ 크게 울면 인간들은 아기들 잠 깨운다고 인상을 찌푸리고, 조심한다고 갑자기 소리를 줄여 버리면 ‘매미가 울지 않으면 여름답지 않다’고 버럭 화를 내. 하여튼, 인간들은 변덕이 죽 끓듯 해. 또, 밤에는 그들이 자는 시간이라 쥐 죽은 듯이 조용히 해야 해. 그런데, 가로등 불빛이 너무 밝아 낮 인줄 알고 울게 대. 소리의 크기를 조절할 사이도 없이 내 몸이 저절로 반응을 해 버려 난처할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야. 그럴 때면 큰 소리가 화근이 되어 목소리를 잃어버린 강아지처럼 될까봐 간이 콩알 만해져. 이웃에 사는 고양이 녀석은 인간들이 자기들 보기 좋은 대로 털도 깎고 옷도 입히고 손톱도 깎아서 흉측스럽게 변해 버렸단다. 친구로부터 인간에 대한 경계의 말을 들어서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었는데, 과연 듣던 대로 자기네만 편하면 남이야 죽든 말든 상관을 안 하는 친구더군. 강아지에게 있어 목소리는 생명과 같은 것인데 수술까지 해서 없애버리지를 않나, 귀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에 들여서는 맞지도 않는 음식, 옷 등을 주며 그들의 곁에 있기를 강요하기나 하고 말이야. 인간의 작은 만족 때문에 그들은 죽어가고 있는 줄은 모르고.

 인간들 주위에서 먹고 사는 파리나 모기의 경우는 더 가관이야. 파리는 먹다 남은 찌꺼기라도 얻어 먹어보려고 온갖 아양을 떨어보지만, 인간은 자신의 것을 남과 나누어 먹는 법은 절대 없어. 인간의 주위에서 윙윙거리다가 급기야 파리는 넓적한 큰 채에 맞아서  처절하게 피투성이가 되어 나가떨어지지. 적극적인 모기는 자그마한 체구에 그런 용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인간을 공격하며 먹고 산단다. 자기 밥줄이라서 사생결단으로 그들에게 달려들어 보지만, 모기 역시 파리처럼 비참하게 될 때가 많지.

 우리가 인간들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것도 아닌데, 조금만 건드려도 저렇게 날카롭게 반응을 하니 어울려 사는 것이 서툰 친구 같애. 친한 척하면서 상대방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 버리고, 조금이라도 자기 것을 건드리면 불같이 공격해 버려. 그래서, 우리 매미들은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려고 해.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숨어서 대충 나의 소리로써 좋은 인상을 끼치며 살아가는 것. 이 삶의 방식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까다로운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그들이 눈을 크게 떠 세상에 살고 있는 존재가 자기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바다, 매미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까지 말이야.)    

후세의 나의 아들, 딸 매미조차도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쓸쓸해 온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지금의 생활이 원래 매미의 삶인 줄 알고 나보다 더 적응을 잘하며 살아갈 거야. 내가 처음 이 곳에 와서 겪었던 충격과 혼란과 인간에 대한 무기력감은 느끼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래도 나는 후세의 매미들이 지금의 소극적인 삶의 방식에 만족하지 않고 좌충우돌 인간들과 부딪히면서 함께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믿어. 인간이 다른 존재의 파괴가 자신의 파괴를 불러오고, 지구촌의 모두가 함께 도우며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 우리가 인간이 했던 파괴적인 행동에 대하여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날 말이야. 그 날이 되면, 옛날처럼 매미는 매미 생긴 대로 목청껏 울고, 나무는 나무 하고 싶은 대로 몸을 흔들고, 개울물은 자기가 흘려가고 싶은 대로 흘러가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거야. 모두가 자기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도, 행복하게 어우러질 수 있는 세상 말이야. 상상만 해도 살맛이 절로 난다. 그 때까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아, 6층의 인간이 소리를 유심히 들으며 나를 찾고 있어. 며칠 전, 그 집의 베란다 방충망에 다리가 빠져 오랜만에 목청껏 울었었는데 그것 때문에 화가 났나봐. 오늘도 인간들에게 들키지 않게 목소리를 낮추고 꼭꼭 숨어야겠다.

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