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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자루


BY 한길 2004-10-03

사람마다 꿈을 담은 자루를 이고 삽니다.
욕심 같아서는 자루 한 가득 꿈과 욕망을 채웠으면 하련만, 채우면 채울 수록 어깨가 결리도록 고달파지는 것은 적당한 꿈을 담지 않고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겠지요.
나에게 맞는 자루를 선택해서, 긴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하나 꿈을 꺼내 실현시킨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인간이 삶을 영위하면서 풀어내며 살아가야 할 숙제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네 꿈이 뭐냐?'고 선생님께서 물으시면 거침 없이 '전 커서 화가가 될래요'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화가가 되려면 화가의 자질을 갖춘 자루를 짊어 지고 평생 살아가야 하는데 화가가 될 자질을 갖추려면 고민도 많이 해야한다'는 선생님의 진지한 표정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화가가 될 자질을 갖춘 자루라......
이 수수께끼같은 문장을 가지고 고민하기를 어언 20년.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처럼 쉬운 것이 또 있을까 쉽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 후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방황하고, 그러기를 20년, 하지만 자루 속에는 아무 것도 채워지지 않은 채 화가가 되겠다던 꿈은 접고 폭삭 주저 앉아버린 중년의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성경에도 새 포도주는 새 자루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꿈을 담은 자루를 자주 갈아주지 않아 자루가 헤어져 새나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가끔 꼭꼭 동여맨 자루의 입구를 풀다보면 실현 불가능한 꿈인 지도 모른다고 쉽게 버리지는 않았는지, 소중한 꿈을 담은 자루를 홀대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네 꿈을 담은 자루를 열어 보자'고 누군가 말한다면 당당히 열어제칠 수 있는지......

너무 욕심을 부려 꿈을 담은 자루를 지고 살기에 벅차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매스컴을 통해 가끔 접하는 아이들의 자살소동, 노인들의 현대판 고려장, 정치인들의 당싸움, 가진 자들의 사기행각......
어떤 자루를 짊어 지고 사는 자들이기에 이리도 다양한 욕심과 절망과 좌절의 꿈들이 펼쳐지는 것인지, 자신의 자루 속에서는 어떤 결과물이 쏟아져 나올 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잘 영근 곡식들을 자루 속에 채우며 미소를 머금는 농부의 행복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처가집에 가끔 들르면 장인어른께서 곳간에 쌓아둔 곡식을 조금씩 꺼내주며 '소중한 곡식이니 아껴 먹어'라고 당부하시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여름내내 고생하며 걷으셨을 곡식을 다 먹지도 못하고 쌀벌레가 생기도록 방치하여 버릴 때가 있는데, 내 꿈도 이렇게 소홀하게 관리하지는 않았는지 자책해 봅니다.
자루 가득 꿈을 짊어지고 살면서 꿈의 결과물을 맛내기 위해 노력이 소홀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해 봅니다.
쌀벌레가 생겨 도저히 꿈을 실현시키기엔 무리가 되도록 방치하지는 않았는지......

새 자루에 새 꿈을 담고 새로운 출발을 해 보렵니다.
사람마다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꿈의 부피나 무게가 다르다면 굳이 욕심을 낼 필요는 없겠지요.
내 현실에 맞는 새 자루를 준비해서 실현 가능한 꿈을 채워 하나하나 풀어가며 살렵니다.
폭삭 주저 앉지 않도록 꿈을 다듬고 맛난 결과물을 맛보며 그렇게 살아보렵니다.
스스로 자루의 무게에 눌려 자포자기하는 미련함을 버리고, 내 현실에 맞는 꿈을 짊어지고 살아가렵니다.
그러다보면 가볍지만 알찬 나만의 자루를 짊어지고 발걸음도 가볍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