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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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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BY 하나 2004-10-08

지하상가 계단을 오른다.

왼발 오른발 발을 뗄때마다 장단이라도 맞추듯 계단 끝에 걸려있는 하늘도 움찔움찔 움직임을 보인다. 그 재미에 괜히 몸을 좌우로 많이 흔들거려본다.

계단을 오를 때는 늘 앞사람 발 뒤굼치에 시선이 박혀버린다.

그 발 뒤굼치는 내게 성실한 길 안내자가 된다. 장애물이 놓여있어도 앞사람이 비키려고 왼쪽으로 이동하면 나도 따라 이동하면 된다.

앞서가는 자, 먼저 가는자는 그만큼 더 살피고 주의를 기울여야하느니

늘 이렇게 뒤에 오는 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여유롭고 행복한 삶이 될까 싶다.

계단 끝에 먼저 올라선 보라색 운동화가 눈에 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다. 보라색으로 인해 아이들의 다리는 더 희고 가늘어 보인다.

두 아이의 운동화가 똑같다.

풋..나도 저맘 땐 저랬었지...좋아하는 친구랑은 뭔가를 꼭 통일해야할 것 같은 생각에

이쁜 스티카도 똑같은 걸로 사고, 공책도 똑같은 걸로 사고, 좋아하는 가수도 같았고, 좋아하는 선생님도 같았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아마도 신발을 맞춰 신는 모양이다.

 

여긴 가로수가 온통 은행나무들이다.

얼마전까지 노란 은행알이 은행잎보다 더 무성하게 열렸더니 이젠 그마저도 다 사람들에게 내 주었는지 보이질 않는다. 간혹 몇 알 씩 달렸거나 버티지 못한 은행알들은 발에 밟힌 채로 제 어미 주변을 떠나지도 못하고 있다.

이 나무엔 왜 은행이 열리지 않았지?

영양이 안 좋은가?

수컷이라 은행이 안 열리는 거야. 형님이 알려주신다.

어?  그런거였어요?

모든 은행나무엔 당연히 은행이 열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나는 언제까지 배워야할까? 아직도 이렇게 모르는게 많은데...

 

저녁 밥상을 차린다.

식구들이 둘러앉는다. 

달그락 달그락...

행복한 저녁 시간이 이어진다. 시샘한 둘째 녀석,  깜깜한 밤을 아랑곳 하지 않은채 포대기를 질질 끌고온다. 이내 등에 착 기대어선다.  밖으로 업고 나가라는 뜻이다.

아직 밥을 다 먹지 못했는데...어미인 나는 일초를 망설이는데 우리 어머니는 행여 손주가 기다릴까 싶어 먹던 밥 숟가락을 내려 놓은채 벌써 녀석을 업고 방문을 나가신다.

어여 먼저 먹으라고 손짓을 하시며 문을 닫으신다.

서둘러 밥을 먹고 대문을 나선다.

저만치 가로등 불 빛에 둘째 녀석을 업고 서 계시는 어머니가 보인다.

아이를 부르며 성큼성큼 내 딛는다.

좌우로 움직이는 몸놀림이 힘겨워보인다.

손주가 뭐길래...

칠순이 넘은 할머니는 하지만 힘겨움을 내비치지 않는다.

아이를 내게 넘기시고는 천천히 걸어오신다.

나, 결코 어머니보다 빨리 걷지 않는다.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어머님의 발걸음, 내가 앞서가면 어머님 서운해하실 것 같아

어머님 주위를 뱅뱅 돈다.

식은 찌게에 마저 밥을 드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