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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옆에는


BY 하나 2004-09-13

주유소 옆을 지날때는 늘 기름냄새가 나서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만다.

그러지 말랬는데...

"배추가 왔어요, 열포기에 만원하는 배추가 왔어요..싸고 맛있는 배추가 왔어요. 배추 사세요, 배추..."

가끔 조용한 동네엔 정적을 깨는 과일이나 야채장사 트럭이 지나가며 끝도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괜한 장난끼가 발동하기도 하고, 반복되던 소리에 책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 짜증이 나기도 해서

"배추 사세요..."

기계적인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대문안에서 나는 그랬다.

"안사요."

"배추 사세요..."

"안사요."

그걸 아빠가 보시고선 엄하게 꾸중을 하셨었다, 그러지 말라고...

그런건 다 사느라고 애쓰는 소리인데 철없던 나,  그걸 매정하게 박대했으니, 지금까지도 그 죄스러운 기억에서 자유롭지가 못하다.

주유소 옆에서 기름냄새가 나는건 당연하다, 미간을 찌푸리지 말아야하는데 또 그렇게 지나고 있다.

재래시장에 가서 생선가게 앞을 지날 땐 으례 나는 비린내, 그 앞을 지날 때 찡그리지 말라고 그러셨는데, 여전히 또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진다.

아빠가 그러지 말랬는데...

모두가 사는 냄새인걸...살기 위해 내는 소리요, 살기 위해서 풍기는 냄새인걸....

아직도 나 철이 없나보다.

주유소를 빙 둘러싸면서 열악한 공장들이 보인다. 정식 콘크리트 건물도 아니고, 다만 콘테이너 박스를 땅 위에 세워놓은 어설픈 공장들...그 안에서 더위와 싸워가며 일하는 사람들이 간혹 지나는 바람에 얼굴을 내밀곤 한다. 저 사람들은 하루종일 기름냄새를 맡으면서 일하는 걸까? 그 앞에서 미간을 찌푸린다는건 그들을 욕보이는 것이겠지...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모통이를 돈다.

그 사이에 다세대주택 한채 비좁은 듯 끼어있다. 주유소 바로 옆이다.

나 그 안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맨 끝방에 사는 할머니를 제외하면 난 그 네개의 방에 도대체 어떤 얼굴이 사는지 모른다.

음식을 할 때도 기름냄새가 난다고 한다.  한여름 더위를 피해 방에 누워 있을 때면 특히나  후덥지근한 바람은 더욱 역하게 기름냄새를 실어온다고한다.

추운 겨울에도 기름 냄새는 여지없이 방으로 흘러들어온다고 한다.

혹 기름이 새는게 아닐까?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여름 장마철 낮은 지대의 집에 빗물이 범람하듯 할머니 방에 기름이 범람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혹 주유소 주인이 할머니 집 지하로 땅을 파고 탱크를 묻은건 아닐까? 기름이 새서 갈라진 벽 사이사이로 스며나오는게 아닐까?

할머니는 혼자 사신다. 

아들이 셋이나 되지만 좁은 방에  혼자 사신다.

큰 아들과 둘째는 배다른 형제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거의 연락을 안하고 지내는듯 하다.

할아버지 살아계실때는 몰라도 지금은 명절때에만 다니러 오는듯 하다.

키운 공이 있음에도 할머니는 당당하게 큰 아들에게 나서지 못한다.

가난을 물려주었다는 자책 탓에 역시 둘째에게도 당당하게 나서질 못한다.

셋째는 배타는 사람이다. 일년의 거의 대부분을 검푸른 바다위에서 보낸다.

지난 겨울 셋째가 조선족 처녀와 결혼을 했다. 비행기 값이 부담스러워 배타고 기차타고 몇날 며칠을 간 후에야 겨우 처녀집에 도착을 해서  결혼식을 했다고 했다.

그 덕에 꼬박 이주일을 할머니 방은 비어 있었다. 중국에서 돌아왔을 때는 한파를 이기지 못한 낡은 보일러가 터져 물이 새고, 그 물이 다시 주렁주렁 고드름이 되어 달려 있었다.

잠 잘 곳이 없는 할머니, 둘째 아들네로 가지만, 보일러를 고치자마자 빈방으로 돌아온다.

젊었을 때 남편을 여의고, 공장에서 일하며 아들 셋을 키워냈다.

눈에 염증이 생겼지만 갈 형편이 되지 않아 그냥 지나갔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가난은 벗겨지질 않는다.

할머니의 양쪽 눈을 앗아간채로...

즉시 안과에 가서 치료를 했어야하는데 결국 웬수 같은 돈은 할머니의 시력을 챙겨 달아나고 말았다.

작년 봄에 쪽방 상담소의 도움으로 큰 병원에 가서 무료로 눈 수술을 받았지만 가망이 없었다.  자식들이 해야할 일을 쪽방 상담소 직원들이 대신해주었다, 그게 그렇게나 죄스러웠던지, 자식들에게 못할짓 한것마냥 어깨 못펴던 할머니, 우리 자식들도 내가 한사코 소용없다고 해서 여직 수술 안 해준거라며 눈에 붕대를 감고 얘기하신다.

붕대를 풀어도 시력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이 가까이가도 알아보질 못한다.

나, 그 마음이 아플까봐 일부러 멀리에서부터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내 목소리를 듣고서야 누군지 아는체를 하신다.

아이들에게 말한다, 멀리서부터 큰 소리로 인사하라고, 그래야 할머니가 널 알아보신다고...

뭘 아는것일까?  녀석들, 군 소리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어머니랑은 젊어서부터 동고동락하신 할머니다.

처음에 우리 어머님댁에 부엌하나 딸린 방을 얻어 살림을 시작하셨다고했다.

아이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돈 좀 벌겠다며 서울로 이사를 갔다고한다.

입은 늘어나고 돈은 모이지 않고 결국 다시 여기로 돌아왔다고한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아이들도 출가를 하고 이제 빈방에는 할머니 혼자 남았다.

가끔 손주들이 찾아오지만, 좁은 방에서 모두 자기엔 손주들이 훌쩍 커버려서

할머니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집으로 보낸다.

그리고 며칠을 가슴 아파 하신다.

혼자 지내는 방엔 텔레비젼이 유일한 낙이자 친구였었는데, 그나마 시력을 잃고 부터는 그 친구와도 온전한 대화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시도때도 없이 어머님 댁에 오신다.

촛점이 없는 눈으로, 조심조심 걸어서, 참 오랜 만에 부쳐낸 김치부침개를 들고 어머님 댁으로 오신다.

한 켠에 설익은 밀가루 반죽이 허옇게 드러나보인다.

"눈이 안보여서...잘 익었는지 모르겠네."

"잘 익었소..맛나네.."

어머님, 할머니가 눈치채지 못하게 허연 밀가루 반죽을 떼내고 부침개를 입에 넣으신다.

"부지런도 하소...언제 이런걸 다 하셨소. 참 나.."

커피를 타 오신다, 두분이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신다.

어머니는 할머니를 바라보시면서, 할머니는 흐릿한 형상을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리시면서...

전화벨이 울린다, 할머니의 셋째 아들이 어머님댁으로 전화를 해왔다.

"낼 온다구? 그래...응..그래..."

할머니 조심스럽게 와 앉으신다.

"낼 셋째 온다요? "

"야...셋째가 태기가 있다네요...와서 쉬고간다고...여관 방 하나 잡아놓으라구 그래여.."

"...."

성한 것들이 지 엄니  고생되는데 뭐 할라꼬 여길 온다고 난리냐고, 어이구 답답한 것들- 우리 어머니 속으로 곰삭이신다, 차마 말하지 못한다. 두분 그렇게 침묵으로 대화를 나누신다.

그래도 아들이 온다고 오랜만에 좁은 방이 꽉 들어찰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 설레는 할머니 마음을 알기에... 

기름 냄새 때문에 입덫이 심하다는 말만 들려봐.

내 가만 안둘겨!!!!

주유소 옆에는 은행나무들이 가로수가 되어 빼곡하다.

나무들도 기름 냄새 때문에 얼굴 찡그릴까?

나무야,너는 아니지?

살아가다보면 여러가지 소리와 냄새가 나게 마련이지...그건 때로 내 모습도 바꾸어버리지만 어쩌겠니...살다보니 사느라고 그렇게 된것을...

넌 변하지 마라, 내가 앞이 안보여도 널 짚고 걸어갈 수 있게, 가끔 힘들면 네게 기대서 쉴 수 있게...넌 늘 거기 있어라.

가을바람에 은행잎 속으로 꽉 들어찬 은행알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