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28

고맙다 메모야..


BY 하나 2004-08-29

“안녕하세요, 홍보팀 송인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부탁하나 드릴려구요..”

 원고청탁을 받고 고민할 새도 없이 내 입이 먼저 OK를 해버렸으니 지난밤 얼마나 고민스러웠는지… 도대체 내가 내세울만한 습관이 있는지, 내가 어떤 버릇이 있는지조차 까맣게 떠오르질 않고, 개그맨의 입담에 녹아들어 쟁반 노래방만 시청하고 정작 본연의 임무는 잊은채 잠들고 말았다. 그러고보니 하나 떠오르는게 있다. 점점 기억력이 쇠퇴되어가는 내게 정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습관이 하나 남아있는것이다, 아직까지도….


중학교 때였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 나는데, 그때 그 수필이 내겐 정말 큰 충격이었다고나 할까?

시인 이하윤(맞는지는 모르겠다)씨가 쓴 “메모광”이란 수필이 국어교과서에 실렸었는데, 그걸 보면서 정말 동질감을 느꼈었다. 어둠속에서조차도 간단한 것은 메모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작가를 보면서 아, 나도 열심히 더 정진해야겠다는 남이 보기에 우스운 다짐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나도 어릴 때부터 늘 수첩을 끼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 특이한 간판 이름이 있어도 수첩 한 귀퉁이에 메모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남들이 보면 쓸데없는 짓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죽기살기로 시간과 공을 들여가며 메모를 하게 된 계기는 바로 내가 머리가 나쁘다는 스스로의 생각때문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머리좋은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메모한 후 반복해서 읽고 기억속에 억지로라도 들이밀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런 습관으로 인해 남들이 미처 기억 못하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기억을 하는 경우가 많아져버렸다. 한때 최불암 시리즈가 유행할 때는 유행시리즈를 수첩처럼 가지고 다녔던 생각이 난다, 왠지 사람들을 만날 때 웃기는 유머 하나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혀서 말이다.

하지만 그 덕에 사람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고, 기억력 좋다는 칭찬 까지 들었다. 메모로 인하여 나는 글쓰기에도 취미를 붙일수 있었고, 학창시절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었다. 그 버릇은 입사를 해서도 어디가질 못했다. 회의시간이나 일상생활속에서 늘 (남들표현을 빌자면) 주저리 주저리 끄적였던 기억이 난다.

 메모로 인해 수첩과 다이어리가 늘어나고, 그게 또한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수집벽까지 생겨버린것이다. 지금도 책상서랍 한켠에는 그때의 수첩들이 차곡차곡 자리잡고 있다. 버리라는데 아까와서 버리질 못하겠다. 그걸 버리면 내 기억력도 그만큼이 없어져버릴 것 같아서…

고객을 지나치리만큼 잘 기억하게 되었고, 자기를 기억해주는 걸 고객은 또 좋아하고, 지금은 업무를 하고 있지만 하면서도 가끔 불편한 것이나 개선점이 있으면 무조건 메모를 해두었다가 제안방을 활용한다. 내가 제안을 많이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나의 메모습관으로 인한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메모를 꾸준히 할 것이다,점점 쇠퇴해가는 내 기억력에게 이것만큼 좋은 보약은 또 없기에…고맙다, 메모야 ^^